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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하워드 진 미국 보스턴 대학 명예교수는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해 “미국 제국의 몰락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주요 중간역”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지난 10월2일 영국의 일간 가디언 웹사이트에 올린 글을 통해 2001년 9·11사태가 미국 제국 몰락의 첫 번째 징후라면 “무능과 탐욕이라는 두 가지 특징으로 유명한 거대 금융기관들에 납세자들이 낸 세금 7000억 달러를 쏟아붓기로 (공화·민주) 양대 정당이 서둘러 합의한 것”이 또 다른 징후라고 지적했다.

세계체제론을 주장해온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 대학 석좌교수는 지금의 경제위기가 단순한 경기침체(recession)가 아니라 전세계적 불황(depression)의 시작이라고 단언한다. 장기적인 수준에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논해온 월러스틴은 10월15일 미국 빙햄턴 대학 페르낭브로델센터 홈페이지에 올린 논평을 통해 파생상품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석유 투기세력을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것은 ‘책임 떠넘기기’이며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월러스틴은 현재의 불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여러 저서에서 펴온 논리대로 장기적 수준의 헤게모니 주기와 중기적 수준의 콘트라티예프(경기 사이클) 파동에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먼저 장기적인 헤게모니 주기를 보면 미국은 1873년 영국에 대항하는 국가로 떠오른 뒤 1945년 헤게모니를 완전히 구축했고, 1970년대 이후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월러스틴은, 미국의 헤게모니는 부시 대통령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추락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으며 미국이 여전히 강대국이지만 수십 년 안에 힘이 약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 질서는 좋은 것일 수도, 나쁜 것일 수도

콘드라티예프 파동은 이와 좀 다른데 세계경제는 1945년 이후 기록적인 호황 국면을 이어가 1967~1973년 최정점을 찍은 후 하향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 하향세는 그전과 달리 오래 지속되어왔다.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이사회, 국제통화기금(IMF), 유럽과 일본의 협력자들이 주기적으로 시장에 개입했기 때문이라는 게 월러스틴의 설명이다.

1987년 주가 폭락, 1989년 저축대부조합 파산,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1998년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 사태, 2001~2002년 엔론 사태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은 세계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했고 그 덕분(?)에 콘트라티예프 하강 국면이 길어졌을 뿐이다. 월러스틴은 하지만 이같은 개입에는 본질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결국 지금 그 한계에 도달했다고 지적한다.

월러스틴의 전망은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 “현재의 체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것을 대체할 새 질서는 무수한 개별 투쟁의 결과일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질서인지를 예측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는 아닐 것이지만 양극화되고 위계적인 더 나쁜 것일 수도 있고, 비교적 민주적이고 평등한 더 좋은 것일 수 있다. 새로운 체제를 선택하는 것이 지금 시기 지구적 차원에 벌어지는 주요 정치투쟁이다.”

미국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먼슬리 리뷰> 편집장인 존 벨라미 포스터는 더 급진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포스터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역사상 극심한 위기 중 하나에 직면했다. 대공황 이후 자본주의 세계에서 이렇게 나쁜 적이 없었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 위기는 “금융시장에 돈을 쏟아붓거나 금리를 낮춘다고 해결될 수 있는 유동성 위기가 아니며 ‘미국식’ ‘자유시장’ 금융자본주의 모델의 총체적인 몰락의 징조이다”라고 평가한다.

부자들 도와주는 게 사회주의?


그는 또 미국과 유럽의 은행 국유화를 사회주의나 급진주의로 혼돈해서는 안 되며 그것은 단지 “전면적인 부채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취한 임시 조처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포스터는 지금의 경제위기에 따른 고통이 온전히 노동자 계급의 몫일 수밖에 없으며 좌파는 “고장난 체제를 수리하려 들 게 아니라 경제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비판도 흥미롭다. 지젝은 <런던서평> 웹사이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1년 9·11 직후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민에게 한 연설에서 공통점을 끄집어낸다. 부시 대통령이 두 연설에서 모두 미국적 삶의 방식에 대한 위협, 그리고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신속하고도 단호한 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지젝은 또한 부시 대통령이 미국적 가치―9·11 당시에는 개인의 자유 보장, 지금은 시장 자본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바로 그 가치들을 부분적으로 보류할 것을 미국 국민에게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제금융안을 놓고 벌어진 ‘사회주의’ 논란에 대해 지젝은 “금융구제안이 정말로 ‘사회주의적’인 조처라면 아주 기발한 것”인데 “왜냐하면 가난한 이들이 아니라 부자들을, 돈을 빌리는 쪽이 아니라 빌려주는 쪽을 도와주는 것이 목적인 ‘사회주의적’ 조처이기 때문”이라며 코웃음을 쳤다. 그는 “자본주의를 수호하는 데 복무한다면 ‘사회주의’도 괜찮다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지젝은 국가의 개입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현재 금융위기마저도 사실은 국가 개입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2001년 닷컴 버블 붕괴에 대한 대책으로 금리를 내려 부동산으로 자금을 끌어들인 결과 현재의 금융위기가 왔다는 것이다.
그가 든 아프리카 말리의 예는 자유시장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말리에서는 면화 재배와 축산업이 가장 규모가 컸는데 서구 열강이 자신들은 지키지 않는 규칙을 강요하는 바람에 두 산업 모두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 정부는 자국 면화재배 농가를 보호하는 데 말리의 1년 국가예산보다 많은 돈을 지출하고, 유럽연합은 또 1년에 소 한 마리당 500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젝이 여기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시장은 전혀 중립적이지 않으며 항상 정치적 결정에 의해 규제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진짜 딜레마는 ‘국가 개입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국가 개입이냐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가 보기에 이것이야말로 진짜 정치, 즉 우리 삶을 지배하는 조건을 규정하는 투쟁이다. 지젝은 금융구제안을 놓고 벌이는 토론은 우리의 사회적·경제적 삶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며 “이제 행동을 할 게 아니라 말을 해야 한다”라고 했다.


하워드 진도 ‘자유시장’이라는 환상을 깨뜨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한 번도 자유시장을 가져본 적이 없고 정부의 개입은 항상 있어왔다는 것이다. 그는 “7000억 달러를 부실 금융기관에 지원할 것이 아니라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주는 것이 대안이다”라며 주택 소유자가 모기지론을 갚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연방 고용 프로그램을 만들어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86세인 노장 역사학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독립선언문이 약속한 것, 바로 만인의 생명·자유·행복 추구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라는 것을 선동하고 조직하라. 그런 과감한 접근만이 미국을, 제국이 아닌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미국을 지킬 수 있다.”
Posted by CUM[쿰;함께]

그러나 경제위기에 대한 케인스적 진단과 처방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부정확하고 부적절하다. 우선, 이번 세계경제 위기는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것이 아니라, 그 훨씬 전인 70년대 이후 이윤율의 장기저하에서 비롯된 장기불황의 연장선상에서 폭발했다.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는 70년대 이후 장기불황에 대한 지배계급의 대응으로 출현한 것으로서, 이는 금융화, 사유화, 세계화 및 노동자 민중에 대한 착취 강화를 통해 불황을 타개하려는 전략이었다.

신자유주의 전략은 이윤율의 장기저하 추세를 역전시키지는 못했지만, 미국의 쌍둥이 거품(닷컴 거품과 주택 거품)에서 보듯이, 일시적인 거품 호황을 가능하게 했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는 70년대 이후 장기불황 추세 속에서도 30년대와 같은 대공황에 빠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그럭저럭 굴러올 수 있었다. 2007년 미국의 주택 거품 붕괴에서 시작된 오늘날의 세계경제 위기는 이제 거품 키우기를 통해 대공황의 도래를 지연하려는 신자유주의 전략이 먹혀들지 않게 되었음을 입증하는 사태이다.

오늘날 세계경제 위기 국면에서 케인스주의가 부활하는 배경에는 케인스주의 덕분에 자본주의가 30년대 대공황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는 신화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30년대 대공황은 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영구 군비경제와 대량의 자본 파괴를 배경으로 한 이윤율의 상승과 함께 종식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또 자본주의 주요 국가가 적자재정을 중심으로 한 케인스주의를 본격적으로 채택한 것은 1970년대 이후 장기불황이 시작되면서부터인데, 이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촉발하여 신자유주의로의 정책 전환으로 귀결되었다. 경제위기의 문제를 유효수요의 부족이나 금융 불안정성과 같은 유통과 금융의 문제로 파악하는 케인스주의로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내적 모순이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이윤율 저하에서 비롯된 경제위기를 기껏해야 일시적으로 늦출 수 있을 뿐 근본적으로 해결하거나 완화할 수 없다.

오늘의 세계경제 위기는 자본주의의 특정한 정책체제(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의 근본 모순에서 비롯된 위기이므로, 케인스주의라는 또다른 정책체제로 회귀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세계경제 위기는 현 체제하에서는 지난 세기 30년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능가하는 야만과 파괴의 과정을 통해 이윤율 상승의 새로운 기초가 마련돼야만 극복할 수 있다. 진보 진영이 이미 지배계급 이데올로기로 전화된 케인스주의(“좋은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운동과 민주적 참여계획경제 구현에 전력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케인즈 시대 계속된 이윤율 저하에 대한 대책으로등장한 것이 신자유주의다. 그런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케인즈로 돌아갈 수 있는가? 어불성설이다. 돌아간다 하더라도 대공황과 2차대전과 같은 파괴의 과정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Posted by CUM[쿰;함께]

지금 언제 본격적으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되어 있는 ‘신용 파생상품’(credit derivative)으로서의 ‘신용파산 스왑’(Crdit Default Swaps: CDS)이 2000년에는 1천억 달러였으나 지난 여름에는 62조 달러로까지 증대해 있다는 보도이니, 실로 유구무언!

비록 표현이 다르고, 또 사람에 따라 방점을 찍는 곳이 다소 다르지만, 그들 간의 그러한 비본질적인 차이를 도외시하면, 그들의 주장의 요점은 사실상 동일하다. 그것은 모두 한결같이 ‘신자유주의’, 혹은 영미형․앵글로-쌕슨 형의 시장만능주의, 혹은 ‘규제되지 않은’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고, 그리하여 ‘시장의 투명성이 보장될 수 있는’, 자본의 탐욕과 방종에 대한 정부의 규제․감독․역할이 보다 강화․확대된 자본주의, ‘조정 시장경제’, 구체적으로는 ‘북구형의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들은 시장과 국가 혹은 정부를 무매개적으로 대립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시장에 대한 국가․정부의 규제․감독․감시 및 국가․정부의 역할 증대를 요구하고 있다. 다름 아니라, ‘규제완화’․‘작은 정부’를 외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고, ‘투쟁’이다! 그리고 그러한 한에서, 혹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들의 주장은 자못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 함정이 있다!

-> 소위 진보진영의 대안의 문제점 : 시장과 정부의 무매개적 대립

저들이 몰계급적인 언사로 그 역할 강화를 요구․주장하는 국가 혹은 정부는 과연 누구의 국가, 누구의 정부인가?

분명 독점자본가계급의 국가․정부이다. 그러나 저들은, 국가의 본질, 그 계급 억압적 기능에 대한 선의의 무지 때문이든, 아니면 그것을 짐짓 은폐하고자 하기 때문이든, 바로 이 점에 침묵하면서 반동적으로 그 독점자본가계급의 국가․정부의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신자유주의의 본질, 그 전선을 왜곡 혹은 은폐하고 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의 본질, 그 전선의 본질이 마치 시장 대 국가, 혹은 시장 대 정부의 대립․갈등에 있는 것처럼 주장하면서, 국가․정부의 규제․감독․역할을 증대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 대 국가, 혹은 시장 대 정부의 대립․갈등은 결코 신자유주의의 본질도 그 전선의 핵심도 아니다.

시장과 국가․정부의 대립이나 갈등, 그것은 그저 언제나 노동 대 자본 간의 대립, 독점자본에 의한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억압의 강화라는 신자유주의의 본질, 그 핵심적 전선을 은폐하고 호도하기 위한 기만적인 치장, 기만적인 슬로건에 불과하다. 그리고 기껏해야 그것은 때때로 발생하는 개별 독점자본과 정부 사이의 갈등에 불과하다. 예컨대, 그토록 ‘작은 정부’를 외쳐대던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부인 레이건 정권의 재정․예산의 구조․규모가 웅변하고 있는 것처럼, 신자유주의에서는 결코 ‘작은 정부’는 존재한 적도, 지향된 적도 결코 없다. 만일 ‘작은 정부’와 유사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단지 독점자본에 대한 규제에서뿐이었다.

-> 시장과 정부의 무매개적 대립은 신자유주의의 본질 전선을 은폐한다.


저들은 케인즈주의와 신자유주의 또한 그것들을 무매개적으로․절대적으로 대립시킨다. 그리고 그들의 대립 속에서는 대체로 신자유주의=악, 케인즈주의=선이다. 바로 현대 서유럽 사민주의가 표방하는 도식 바로 그것이다.

전선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선전하는 것은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해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로서의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뿐 아니라 국가독점자본주의로서의 케인즈주의에 대해서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며, 곧바로 반동적인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봉사하는 것이다.

-> 진보진영의 대안의 문제점 : 케인즈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부당한 대립

김성구 교수가 명확히 하고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 위기에 직면해서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1930년대 대공황 이래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성립한 이후 더 이상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케인즈주의 시대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국가의 개입과 위기관리는 국가독점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주요한 일 요소이다.

실제로 케인즈주의나 그것의 실천판(實踐版)인, 파시즘적 경제정책들은 물론, 그 자유주의적 판(版)인 뉴딜도 결코 진보적이지 않다. 아니 거꾸로 극히 반동적이다. 그것들은 모두, 특히 1930년대의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 웅변하는 것처럼, 인류의 안전․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이미 지양되었어야 할 자본주의적 생산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한 억지 이론과 정책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신자유주의를 비판․비난․심판한다며 곧바로 케인즈주의로, 즉 사실은 신자유주의의 기초일 뿐인 케인즈주의로 달려간다. 그리하여 자본의 ‘탐욕’ 및 ‘방종’에 대한 국가의 규제․감독을 요구하고, 국가가 ‘성장’이 아니라 ‘분배’에 그 정책의 중점을 둘 것을 요구한다. 저들은 ‘복지국가’라는 형태 속에 독점자본의 반노동자계급성이 은폐되어 있는 자본주의를 지향한다. 그만큼 그들은 반동적이다.

-> 독점자본의 반노동자계급성을 은폐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그나마 위로부터 그러한 ‘복지국가’를 주조해내려는 저들의 주장은 사실은 역사적 조건을 부당하게 사상한 저들의 망상에 불과하다.

케인즈주의적 소위 ‘복지국가’는 쏘련이라고 하는, 제국주의의 대립물, 억압과 착취에 대한 강력한 대립물․반대물로서의 20세기 사회주의가 발전하고 있었고,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계급투쟁이 존재하는 조건 속에서만 형성․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는 실제로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국가가 해체된 후, 예컨대 “제3의 길”, “새로운 중도” 등의 이름 하에 심각하게 해체과정을 밟아 왔으며, 바로 그것도 이번의 공황이 이토록 심대해질 수 있었던 주요한 요인의 하나이다.

그러나 저들 ‘진보적인 지식인들’도, 일부의 ‘사회주의 혁명가들’도, 이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개는 어느 것이 누구의 깃발인지조차 치명적으로 착각하고 있다. 물론 독점자본의 반공선전에 녹아나고, 그 장단에 어릿광대 춤을 추면서 말이다.

->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가 건재했기 때문에 각 자본주의나라 내의 계급 투쟁도 더 활발하게 벌어질 수 있었다. 결국 계급역관계 상 자본가들이 후퇴하는 국면이었기 때문에 케인즈주의도 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소위 진보주의자들은 이런 계급 역관계를 무시하고, 계급의 복원, 계급의 힘의 강화는 이야기 하지 않고 대안으로 케인즈 식의 복지정책만 주장하고 있다.
계급투쟁이 없는 케인즈 정책은 결국 <국가를 앞세운 대자본에 세금 몰아주기>로 끝날 수밖에 없다.



앞에서 본 것처럼, 저들은 “이번 위기는 금융에 대한 지나친 규제완화와 감독 부실에서 온 것”이라는 식의 인식을 가지고 있다. 위기의 ‘근본 원인’이니 ‘근본적인 문제’니 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결국 “금융에 대한 지나친 규제완화와 감독 부실”이 위기의 근본 원인이요, 따라서 그에 대한 규제․감독․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선, 저들의 주요 관심이 ‘시장에 대한 국가․정부의 규제․감독․조정’ 등에 가 있을 때, 저들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무정부성’에 대해서는 비록 희미하나마 무언가 감각․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적대성에 대해서는 전혀 어떤 인식․이해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저들은 공황의 진정한 원인이나 성격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이고, 거기에서 바로 몰계급적인, 사실은 독점자본의 이익을 옹호하고 절대화․영구화하는, 대안 아닌 대안, 사민주의를 주장하게 된다.

그러나 현 위기의 본질을 기본적으로 금융위기로 보면서 그것이 소위 실물경제로 비화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은 사실을 정확히 거꾸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관점은 현재의 위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화, 즉 주택의 대량 미분양 사태와 그에 따른 주택가격의 하락, 다시 그에 따른 주택대출 원리금 상환의 연체․불능화에서 유발되었다는 자신들의 인식, 그러한 사실 자체와도 모순된다.

현 상황은 분명 거대한 금융위기, 거대한 신용위기임에 틀림없다. 온 세상을 호령하며 쥐락펴락하던 거대 금융자본이 속속 파산하고, 거대 금융기관들이 서로가 서로의 지불능력을 믿지 못해서 돈을 움켜쥐는 바람에,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RB)를 위시한 각국의 중앙은행과 정부가 역사상 유례없는, 상상도 못했던 거액의 구제자금을 살포하고 있는데도 금리가 폭등하고 전세계 금융시장이 마비상태에 빠지다시피 하고 있는 현 상황은 분명 거대한 금융공황, 거대한 신용공황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금융공황, 신용공황은 결코 ‘실물경제’의 위기에 의하지 않은 자립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실물경제’의 위기의 현상형태의 하나에 불과하다.

맑스는 말한다.

경제학의 천박성은 특히, 산업순환의 시기전환의 단순한 징후인 신용의 팽창과 수축을 그 원인으로 삼는 데에서 보인다. 일단 일정한 운동에 던져진 천체가 끊임없이 동일한 운동을 반복하는 것과 전적으로 마찬가지로, 사회적 생산도 그것이 일반 팽창과 수축이라는 교대하는 운동에 던져지자마자 이 운동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결과가 다시 또 원인이 되고, 그 자신의 조건들을 부단히 재생산하는 모든 과정의 부침은 주기성의 형태를 취한다.

화폐시장에서의 공황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사실은 생산과정 및 재생산과정 자체에서의 비정상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여러 경제학자들이 현 위기를 단순히 금융위기로서 규정하면서, 규제․감독 등 금융상의 관행을 바꿈으로써 위기를 해결하고, 나아가 예방․회피할 수 있다고까지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 경제학의 천박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은행과 신용은” 물론 “자본주의적 생산을 그 자신의 한계를 넘어 강행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고, 또한 공황과 사기(詐欺)의 가장 유효한 매체의 하나”이기 때문에, 공황의 규모, 그 심도나 격렬도 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만, 그 작용은 어디까지나 거기까지이다.

그리고 현 위기의 심각성, 그 역사적 의의도 사실은 바로 그 점, 즉 그것이 단지 규제완화․감독소홀 등과 같은 금융관행상의 문제 때문에 발생한 단순한 금융위기․신용공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본질적으로 생산과 소비간의 엄청난 충돌, 엄청난 과잉생산에 의한 것이라는 데에 있다.

그 의의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 지나가듯이 하는 말들이긴 하지만, 그리고 “이번 위기는 금융에 대한 지나친 규제완화와 감독 부실에서 온 것” 운운하는 따위의 천박한 인식과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것처럼, 위기는 분명 주택의 과잉생산에 의해서 발발하였고, 이미 여러 분야, 여러 부문에서 그 과잉생산이 명확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최대 산업의 하나인 자동차 산업은 엄청난 과잉생산이 일어난 나머지 GM이나 포드, 크라이슬러 같은 ‘빅 쓰리’의 생존 가능성 여부가 이미 월스트리트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불과 수개월 전만해도 웃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렵다고 아우성치던 철근, 철강도 이미 세계적 규모에서 엄청난 과잉생산임이 명백해지고 있다. 조선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반도체나 LCD 산업 등은 이미 지난해부터 그 가격이 심각하게 폭락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노동생산성의 급격한 발전에 의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엄청난 과잉생산, 그에 따른 출혈경쟁에 의해서 그렇게 폭락해 왔다. 기타 대부분의 산업부문에서도 물론 유사한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산업은 현대 자본주의의 세계적인 주요 산업일 뿐 아니라 하나 같이 한국 자본주의의 명줄을 쥐고 있는 주요 산업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위기를 단지 금융상의 그것으로만 보는 백치증세 때문에, 강만수 장관 같은 주요 관료들뿐만이 아니라, 앞에서 본 것처럼, 그야말로 건필을 휘두르고 계신 우석훈 교수 같은 이도 한가하게도 “아직 한국의 실물경제는 대체적으로 위기에 직면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운운하고 있다.

-> 문제는 과잉생산이다.
여기서 모순의 기본 축은 생산의 사회적 성격은 강화되나 생산 수단의 독점은 반대로 강화되는 데 있다.


월스트리트의 탐욕을 비난하는 극우 이데올로그들이든, 우리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이든, 저들은, 앞에서 본 것처럼, 신자유주의를, 저들 독점자본이 기만적으로 표방하는 바에 따라, 단지 시장 대 국가의 문제로, 특히 주로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완화, 감독 소홀의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특히 이른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비롯한,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억압의 강화가 그 핵심이다.
그리고 그것을 불가피하게 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리고 물론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면서 그 과정을 증폭시켜가고 있는 것은, 우선 노동생산력의 발전, 특히 자본주의적 생산의 틀 속에서의 과학기술의 혁명이다.

그리고 극소전자(ME)혁명, 정보통신(IT)혁명 등의 규정을 수반하면서 진행되어온 특히 지난 30여 년 동안의 과학기술혁명은, 이전의 어떤 과학기술혁명보다도, 자동화, 그것도 전면적 자동화, 나아가 무인생산(無人生産) 체제를 의식적으로 지향한 것이었고, 또 어느 때보다도 그러한 방향으로의 진전이 이루어졌다. 물론 특별잉여가치․초과이윤을 취득하기 위한 자본의 탐욕, 그리고 패배는 곧 파산․몰락을 초래하는 경쟁이라는 외적 강제에 의해서 그렇게 추진되었다.

인간의 필요 충족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삼는 합리적인 경제체제, 그러한 사회체제 하에서라면, 과학기술혁명에 따른 노동생산성의 비약적인 증대는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축복이다. 물질적 생활수단의 생산을 위한 노동시간을 그만큼 단축할 수 있고, 그러한 필요노동시간으로부터 해방된 시간을 잠재되어 있는 인간적 자질을 개발하는 데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유재산제에 기초한, 잉여가치․이윤을 위한 생산체제인 자본주의적 경제체제 하에서는 그것은 노동자 대중의 재앙(災殃)이다. 소수의 노동자에게는 장시간 노동이 강제되고, 다수의 노동자들에게는 실업과 반실업, 비정규직, 그에 따른 극심한 빈곤․고통이 강제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그 노동(시장)의 유연화, 구조조정 등은 모두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하에서의 과학기술혁명의 그러한 작용을 강제․강화하고 제도화하는 억압기제이다. 그리고 바로 그에 의한 광범하고 심대한 대중의 빈곤 위에서 폭발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과잉생산위기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자본가 국가들이 설령 어떤 재정․금융 정책에 의해서, 즉 파산해가는 금융기관들을 국유화하고, 금융시장에 엄청난 ‘유동성’, 즉 지불수단을 공급함으로써 금융시장을 진정시킨다고 하더라고, 그것이 곧바로 공황을 끝내는 것이 결코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대한 규모로 폭발하고 있는 대공황은 바로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속에서 발전한 생산력으로서의 과학기술혁명이 사실상 더 이상 자본주의체제 그것과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핵심은 대중의 빈곤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과학기술이 발전 할수록 오히려 민중은 가난해 지고, 그 자체가 자본주의에 심각한 타격으로 된다. 사적소유에 기초한 이윤생산 체제인 자본주의사회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은 일정 수준까지 생산력의 발전을 견인하지만 결국 질곡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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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땅값 → 높은 공장용지값 → 제조업 공동화ㆍ외자유치 걸림돌
  
  부동산 투기로 땅값이 세계 최고수준으로 폭등한 탓에 한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려면 엄청난 공장용지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악조건을 떠안게 됐다. 흔희 왜 한국에서 공장 문을 닫고 중국으로 가는지에 대해 ‘비싼 임금을 피해 값싼 노동력을 찾아 떠난다’는 논리가 있지만,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이 조사해 발표한 통계는 핵심 원인이 다른 곳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경련에 따르면 한국의 안산 반월ㆍ시회국가산업단지와 중국청도기술개발구를 사례로 주요 인프라 환경을 비교해보니, 한국이 중국에 비해 임금 약10배, 토지가격 약40배, 법인세 약2배, 공업용전기비 약1.9배, 공업용수비 약1.5배 정도 높은 실정이라고 한다.
  

  임금은 10배 차이지만 땅값은 무려 40배가 차이난다는 것이다. 임금이 중국에 비해 높은 이유도 따지고 보면 중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세계 최고 수준의 땅값과 높은 주택가격, 그에 따른 높은 물가 때문이라고 할 때, ‘왜 중국으로 가느냐’에 대한 대답은 ‘한국에 비해 40분의 1밖에 안 되는 값싼 땅을 찾아서’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전경련, 삼성경제연구소, 산업연구소 등에서 조사 분석한 통계를 보면 중국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유럽, 미국 등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어느 나라와 비교해서도 한국 공장용지 분양가는 압도적으로 높다. 어느 지역을 비교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공장용지 구입 부담은 경쟁국가에 비해 적게는 2배, 많게는 100배나 된다.
  
  땅을 이용하지 않고 기업을 운영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높은 땅값은 한국경제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중요한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공장용지뿐 아니라 도시에서 사무실을 낼 경우에도 한국 기업은 대부분의 경쟁국 기업에 비해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 서울의 임대료 지수는 97로 런던(135), 동경(100)을 제외하고는 멕시코시티(25)의 약 4배, 오클랜드(39), 프랑크푸르트(43), 벤쿠버(44), 브뤠셀(52)의 약 2배 가량 비싸고 파리(64), 시드니(73), 뉴욕(84)에 비해서도 훨씬 높다.
  


 
  우리나라는 국민경제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각국의 건설업 비중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1990년대 11~12%대를 기록했고, 2000년대 들어 한 자리수로 낮아졌으나 여전히 9%대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4~6%대에 머물고 있고 일본의 경우 부동산 거품 붕괴 후 건설업 비중이 낮아져 6%대로 떨어졌으며, 미국의 경우 4%대 전후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GDP 대비 투자비중을 봐도 건설업의 비중은 지나치게 높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 국내총생산에서 건설투자의 비중이 23.4%이지만, 선진 8개국의 평균 비중은 13% 수준에 머물며, 특히 주택투자와 토목투자는 우리나라에 비해 각각 3분의 2와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일정 수준 이상의 주택 재고와 인프라 시설이 갖춰지면, 건설산업의 성장률이 경제성장률을 밑도는 것이 선전국의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왕세종, 2004) 실제로 각국의 건설업 성장률을 비교해보면 대다수 선진국의 건설업 성장률은 30여 전부터 1~2% 대에 머물렀고 성장률이 높다 해도 3%대를 넘지 않고 있다. 반면 한국은 70년대에는 두 자리수 성장률을 기록했고 80~90년 내내 5.6~7.9%의 가파른 성장세를 계속했으며, 2001년 5.5%, 20002년 2.8%, 2003년 8.1% 등 최근에도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또 건설투자 비중이 설비투자 비중보다도 높게 나타나고, 건설투자가 설비투자보다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이 큰 상태여서 선진국형 산업구조와는 거리가 먼 상태이다. <표 2-44>에 나타나있듯이 실제로 1996년~2000년까지 건설투자 비중이 큰 상위 20개 국가를 보면 모두 후진국들이며, 그 중에서 한국은 14위를 차지하고 있다.
  


  시민경제사회연구소에 따르면 <표 2-46>과 같이 외환위기 전 한 해 48~54만호 안팎이던 아파트 건설량은 1998년부터는 한 해 평균 34만호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2003년 건설회사수는 1998년 대비 3배로 늘었고 그런데도 건설회사의 부도율은 급격히 줄어 2001~02년에는 1% 미만을 기록했다.

물론 건설회사수가 3배로 는 데는 공공택지를 분양받으려 이른바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분양가 자율화 조치로 5년 사이에 분양가가 두 배로 올라서 건설회사의 수익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분양가가 두 배로 올라 건설물량도 줄고 회사수도 늘었지만 부도율은 크게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여파로 주택가격은 크게 올랐고 서민경제는 어려워졌으며 가계대출이 크게 늘어 내수가 침체되고 경제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물론 ‘토건국가’에서 살찌는 ‘건설족’ 대부분이 대형 건설업을 겸업하고 있는 한국의 재벌들이다. 재벌 대기업을 비롯한 기업들은 자본투자이득 보다 더 큰 규모의 부동산투자이득을 노리고 부동산 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세계 최고수준이어서 부동산이 없는 기업은 원가 부담이 큰 부담이 되어 기업할 의욕을 잃는 반면, 부동산을 많이 가진 기업은 더 큰 이득을 보게 되니 기업들도 생산적 기업활동 보다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어 왔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재벌들은 제3차 부동산 투기 파동이 한창이던 1989년 당시 장부가격으로 자기자본 18조의 절반이 넘는 10조원어치의 부동산을 보유하며 생산활동보다 땅 투기에 열을 올려 국민적인 공분을 산 적이 있다. 토지공개념위원회의 연구에 따르면 1974년에 똑같은 금액을 토지와 자본에 투자하여 1987년에 이르렀을 때 토지투자이득이 자본투자이득보다 6배 이상 컸다고 한다.
  
   표에서 보듯 2004년 1/4 분기 현재 30여개 대기업이 보유한 부동산 규모는 장부가격으로만 52조9천76억, 실제 시가로는 무려 213조8천919억어치에 달하고 있다.
  

  외국과 비교해서도 우리나라 기업들은 지나치게 많은 부동산을 갖고 있으며, 그 결과 설비투자의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2001년 말 현재 한국과 미국, 일본 기업들의 부동산 보유 실태를 조사한 데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 보유비중은 총자산 대비 12.5%로 미국 (2.1%), 일본(9.9) 등에 비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1980년(4.9%)에 비해 2.6배나 커져 꾸준히 늘어났다. 건물의 비중도 12.8%로 1980년(8.7%)에 비해 크게 증가했으나, 설비투자와 직결되는 기계장치의 비중은 1980년(17.9%) 보다 낮은 15% 내외를 유지하고 있어 생산과 거리가 먼 부동산 자산을 늘리는 데 힘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자산을 늘리는 데 힘쓰다 보니 총자산 중 유형자산의 비중이 2001년 말 현재 45.2%로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24.9%), 일본(30.7%) 등 주요 선진국 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기업의 총자산 회전율은 미국, 일본과 비슷한 반면 설비투자의 효율성을 평가할 수 있는 유형자산회전율(매출액/유형자산)은 2001년 중 2.18회로 미국(3.67회), 일본(3.25회) 등의 약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제조업체가 동일 규모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미국ㆍ일본 기업에 비해 각각 1.7배와 1.5배의 유형자산을 사용한다는 이야기이다.
  

  재벌과 기업들이 투기용으로 사둔 땅과 건물을 처분하고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자산을 운영하지 않는다면 격렬한 노동쟁의라는 ‘부메랑’ 뿐 아니라, 설비투자의 효율성 등 기업운영의 정상적인 발전 또한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부동산 투기는 기업들이 자본주의의 특징인 생산적 투자 증대에 소홀하게 되는 비정상적인 자본주의 경제양식을 뿌리내리게 하고 있다.



  국민경제에서 건설업 비중이 지나치게 비대한 상황에서 기업들도 부동산 투기에 적극 나서는 가운데 금융기관이 지나치게 부동산 담보에 의존해 대출을 하게 됨으로써 또 다른 차원의 문제로 번져간다.
  
  은행은 금융중개자이자 자금배분 조정자로 경제발전에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은행이 경제발전을 돕고 동시에 은행도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업금융지원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특히 은행은 내부유보가 크고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대기업 보다는 내부유보도 적고 자본시장 이용도 어려운 중소ㆍ신생기업을 적극 지원해야만 은행과 경제가 함께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은행들은 오래 전부터 부동산 담보에 의존해 대출을 해왔다는 점에서 금융중개자나 자금배분 조정자로서의 기능은 물론 경제발전을 돕는 적극적인 역할을 제대로 해오지 못해왔다.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일반은행(시중은행 + 지방은행) 원화 대출금 중 부동산 담보 대출비중은 40% 안팎에 이르렀다. 그런데 1995년부터 30%대로 낮아져 2000년에는 36%대까지 떨어졌으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던 2001년부터 다시 높아지기 시작해 2003년에는 47%에 육박하게 되었다. 2001년부터 본격화된 제4차 부동산투기 파동 기간동안 부동산 담보에 의존하는 대출 추세는 더욱 강화된 것이다.
  

  더구나 외환위기 후 국내 은행 대부분을 장악한 외국자본이 수익성 전략의 일환으로 기업대출비중을 줄이는 대신 가계대출을 크게 늘렸고, 특히 부동산 투기를 지원하는 부동산 대출을 급격하게 늘리면서 은행의 자산운용 행태를 변화시켰다.
  
  국내 일반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은 2004년 9월말 현재 59.2%로 사실상 외국자본이 지배하게 됐고, 그 가운데 제일ㆍ외환ㆍ시티ㆍ외은지점은 경영권까지 장악하고 있다. 외국자본이 경영권까지 장악한 ‘외국계’은행들은 주택담보 대출 등 안정자산에 치중하는 경영으로 부동산을 담보로 한 가계대출을 크게 늘리고, 자금사정이 어려워 지원이 필요하지만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 대출을 급격히 줄였다.
  
  이들 ‘외국계’ 은행들은 1998년말~2003년 9월 사이에 기업대출 비중을 33.3%나 줄이는 대신, 가계대출 비중은 무려 35.2%나 늘렸다. 또 총대출액 중 중소기업 대출비중은 2000년 40.2%에서 2004년 34.6%로 5.6% 낮아진 대신, 가계대출 비중은 32.8%에서 56.6%로 무려 23.8%나 높아졌다.(한국은행 은행국, 2003.12. 한국은행 금융연제연구원, 2005.5)
  
  외국자본이 장악한 은행들의 이같은 자산운용 방식은 은행권 전체로 파급됐다. 1997년 일반은행 원화대출금의 65% 가량이 기업에 대출되었고, 가계대출은 33%를 밑돌았다. 그러나 외환위기 후 국내은행 대부분을 사실상 외국자본이 장악한 뒤 제4차 부동산투기 파동이 시작된 2001년 한 해동안 기업-가계대출 비중은 48.9% 대 49.1%로 처음으로 역전됐고, 지난 해 말 기준으로 가계대출은 55.1%를 기록한 반면 기업대출은 43.5%로 줄어들었다.

  

  특히 중소기업 대출이 크게 줄어들어 중소기업이 극심한 자금난을 겪게 되었다. 1966년 전체 원화대출 중 대기업 : 중소기업 대출 비중은 20.7% : 54.3% 였으나 2003년에는 5.3% : 39.7%로 떨어졌다. (삼성경제연구소, 2005.1.3)
  

  한국은행이 조사 분석한 데 따르면 은행이 가계에 대출해 준 돈은 대부분 주택구입용이었는데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빌려준게 아니라 90%는 집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서울ㆍ수도권에 집중돼 제4차 부동산 투기 자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제4차 부동산 투기 파동이 한창이던 2001년 1월부터 은행이 가계에 대출한 돈 중 주택구입용 대출금은 40%를 훌쩍 넘기며 갈수록 늘어 2002년 들어서는 60% 가까이가 모두 주택구입비로 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대출된 주택구입비의 90% 이상은 모두 이미 집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대출되어 집이 없는 사람에게 빌려준 비중은 채 10%도 되지 않았고 대출규모도 거액이 많았다. 다시 말하면 내집마련 비용이 아닌 재산증식수단 즉 부동산 투기 목적으로 대출해준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은행조차 부동산 투기에 몰두함으로써 금융시장의 자금중개기능은 크게 약화되어 은행이 경제발전에서 마땅히 해야 하는 기능은 마비돼가고 있다. 경제성장을 돕고 동시에 은행도 성장하는 은행 본연의 궤도를 이탈한 채, 투기를 부추기고 투기이득을 빨아들여 자신도 살찌는 왜곡된 금융산업의 현실은 부동산 투기가 불러온 또 하나의 심각한 결과이다.
  
 
Posted by CUM[쿰;함께]
1. 선진자본주의 국가로부터의 위기



위의 표를 보면 2006년 현재 미국의 총GDP 비중은 전세계 총GDP의 27.3%에 달하고
선진 30개국의 총GDP 비중은 무려 74.3% 달합니다. 이번 경제위기는 이렇게 전세계 경제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제를 진앙지로 하고 있습니다.따라서 이번의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는 지난 몇십년 간의 국지적인 위기와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2. 새로운 성장 동력이 보이지 않는다.



전세계적으로 IT산업은 1990년대 급성장하여 2000년에 그 성장률이 정점에 도달합니다. 특히 1999년과 2000년의 경우 국내외적인 IT산업의 성장은 가히 활화산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로 IT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너무나도 운 좋게도 1997~1999년 금융위기 때 IT산업 폭발이라는 행운을 만난 것입니다. 표에서 보다시피 1999년과 2000년 사이 우리나라 IT산업은 수출과 내수에서 경이로운 고도성장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리고 이런 IT산업의 고도성장이 외환위기 극복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그러나 우리 눈앞에는 97년의 IT산업같은 산업이 보이지 않습니다. 

3. 잠재되어 있는 시한폭탄, 부동산 거품



지금의 위기가 1997~99년 위기보다 더 심각하다고 보는 또다른 근거는 지금의 위기가 위험천만한 부동산 거품과 가계 부채를 수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997년 당시 우리나라의 부동산 가격에는 거품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1990년대 중반에는 부동산 거품이 아니라 분양가 상한제로 인한 건설사 부도율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위의 표를 보면 1990년과 1997년 사이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이 2.4배나 오를 때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한 푼도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해외의 경제전문가들은 당시 한국의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없어서 한국이 외환위기를 비교적 손쉽게 극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던 것입니다. 당시 한국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없어 기업들이 부동산 매각을 통해 위기 탈출을 하는 것이 매우 용이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2008년 우리나라 부동산 거품은 상당히 심각한 상태에까지 부풀어 올라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는 1997~99년 위기 때와는 또다른 커다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입니다.


Posted by CUM[쿰;함께]

 한 마디로.... 학교 운동장에서 땡볕이 내려 치는거야... 이건 국제 달러 유동성 경색을 의미 하지.

 근데 학교에서 체력장을 한다면서 애들보고 장거리 마라톤으로 운동장 10바퀴를 뛰래..

 근데 한국이라는 애가 초반 3바퀴째에 목이 말라서 거의 탈수 직전이야... 그 때 물을 주면서 탈수 증상을 서서히 풀어 지고  지구력이나 내성이라는걸 키워 줬어야 하는데 한국 정부에서 한 일은?.

  몰핀 주사기 들고 가서 주사 바늘 박고  뛰라고  하는거야...

 그럼... 일단  히로뽕 쳐 맞고 잠깐은 가지..근데 이건 리먼이 작살나네... 그러면서 이젠 CDS는 이제 태국보다 더 높아서 아예 후진국 취급..

 한국 애들이 무시하고 깔보던 필리핀 보다 후진국으로 신용도 폭락...

 갑자기 뛰다 보니까 이젠 운동장 밖에 원자탄의 버섯 구름이 보이기 시작했어..

 이 때도 달라는 물은 안 주고 몰핀 쳐 주면서 알아서 하라네..

 이젠 독자 회생 아니면 IMF 인데.. 이미 일본 애들은 한국을 사실상 IMF 에 들어 간다는 전제 조건하에 보고 있거든..

 다만 차이는 예전에는 알만한  인지도 있는 대기업들이 박살이 나니까 엄청난 위기감으로 보였지만 지금 밖에 나가면 조용하지..

 그건  제일 바닥인ㅁ 중소기업부터 서서히 박살이 나고 있기 떄문에  실제 현실 인식이 떨어져서 그런거야..

 한 마디로 97년에는 팔에 기부스를 했지만 기초 체력은 있엇는데 지금은 다리뼈부터 망치로 박살을 내면서 다리에 기부스 하고 휠체어 없으니까 목발 가지고 뛰라는 꼴이지.

Posted by CUM[쿰;함께]

경제악순혼 구조

Memo 2008/10/24 16:22
Posted by CUM[쿰;함께]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신용 쓰나미"

"허점을 발견했다. 40년 이상 경제이론이 아주 매우 잘 들어맞고 있다는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현재까지 금융시장의 손실을 고려할 때 일시적 해고와
실업률의 현저한 상승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그린스펀

Posted by CUM[쿰;함께]

 이때의 미국은 소련에 비해 자신들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애썼습니다. 자본주의의 종주국 미국이, 대공황 이후로는 복지정책에도 조금씩 신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들이 어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이같은 정책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케인즈적인 사고방식, 즉 '정부가 지출을 어떤 형태로든지 늘리는 것이 경제에 바람직하다는' 사고를 깔고 시작됐습니다. 소련은 미국을 전방위로 압박하면서, 미국의 복지 제도까지도 확충시켜주는, 참으로 다양한 면에서의 '적'이었던 셈입니다. 이때야말로 '미국은 노인의 천국'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때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냉전시대에 자라난 독버섯이 또하나 있었으니, 바로 '군산복합체'입니다. 기업, 특히 군수산업에 관계를 둔 기업들이 정치세력들과 야합하면서 생긴 이 군산복합체는 그들의 이윤 창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전쟁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실지로 이들은 미국을 월남전과 이라크전의 수렁에 빠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전횡은 결국 미국이 세계에 시장을 만들고, 이를 지켜내고, 확대하는 과정에서 더욱 커지고, 레이건 때에 와서는 마침내 '우주 방위 구상'이라는 허황된 것을 만들어내기에 이릅니다. 여기에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하되고, 아프간을 통해 소련을 무너뜨리기도 했지만 미국 역시 이 간접전비로 인해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소련이 무너지자, 미국은 바로 자신이 쓰고 있던 허울 하나를 재빨리 벗어던집니다. 더 이상 자신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복지정책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던거죠. 그리고 저소득층에게 그동안 지급돼 왔던 생활보조비들을 가차없이 삭감하고, 방산에 대한 과다지출로 인해 출혈한 재정을 메꾸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미국 중산층과 서민이 겪는 진짜 비극들은, 사실 이때부터 그 싹이 잉태되기 시작한 거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일단 전기며 수도와 같은 공공산업의 매각이 시작되고, 사기업들이 이를 재빨리 흡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에서 지원해주던 구매력이 사라진 빈민층은 허덕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불만과 배고픔은 곧 미국 내 범죄 증가율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LA의 한인타운이나 사우스지역의 슬럼가에서 권총강도들이 횡행하고(그 피해자들 대부분이 한국인들이었다는 사실 아십니까..) 이같은 불만은 1992 년 로스앤젤레스 지역 일원에서 일어난 4.29 사태를 통해 표출됩니다. 많은 매체들이 이를 인종적 불만에 의한 폭동으로 오도하고 있지만, 사실 이는 심각할 정도로 벌어진 빈부 격차와 정부의 지원 없인 살아갈 수 없었던 계층들의 사회적 불만이 쌓여 일어난 사태로 보는 것이 정석입니다. 이때 물론 인종적인 사건인 흑인 로드니 킹에 대한 백인 경찰관들의 폭행사건과, 그 판결 결과에 불만을 품은 흑인들이 도화선이 됐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후 전개 과정은 인종을 넘어선 것이 되어 버립니다. 이것은 미국의 빈부 격차가 어느정도로 위험한 것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됐습니다. 

구 소련 체제 하에 있던 동구권이 하나둘씩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어 들어오면서, 그들은 자본주의의 시장화되었고, 그들의 우수한 노동력은 기업들의 착취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동독의 경우, 그들의 불만을 흡수한 것은 다시 대두한 극단적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였고, 외국인 노동자들(특히 터키 등 그들의 과거 식민지 출신)에 대한 테러와 그들의 집이나 비즈니스에 대한 방화가 심각한 수준으로 벌어졌습니다.

견제를 잃은, 그래서 허울을 벗은 자본주의는 세계 각국에 각종 사회악들을 잉태시키며 그 세력을 끝간 데 없이 넓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중산층이란 것이 사실은 정부의 지원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다는 사실도, 정부 지원이 끊기면서 그대로 입증됩니다. 소수민족들이 할 수 있는 사업에 대해 정부가 융자지원을 해주는 SBA 의 규모도 크게 작아지고, 과거 연방정부가 해 줬던 각종 지원들도 주정부들이 이를 떠맡거나 혹은 혜택 자체가 없어지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거기다가 의료보험의 대규모 축소, 전기 수도 등 인프라의 민영화는 중산층들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기 시작했고, 여기에 미국의 대기업들이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 을 맺어 이윤추구만을 목표로 자신들의 생산시설을 인건비가 싼 외국으로 옮겨가면서 중산층은 아예 그 설 자리를 상실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일자리를 잃은 중산층들은 당연히 빈민층으로 전락하게 됐습니다. 혹은 일자리가 있다 해도 과거보다 열악한 상황에서 노동을 해야만 하는 중산층 노동자들은 그들의 봉급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아 크레딧카드를 통한 빚을 지게 됐고, 그것을 돌려막기 해야 하는 서민들은 지금도 엄청난 크레딧카드 빚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까지도 사회 전반에 다시한번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폭탄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크레딧 폭탄'이 터질 경우, 미국은 지금 겪고 있는 금융공황과는 또 다른 경제적 대란을 겪을 것이 분명합니다.

 미국에서 중산층은 실제로 붕괴된거나 다름없습니다. 거기에 이번의 세계공황은 자본주의 사회가 그 뿌리부터 흔들리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아직도 계속해 터질 것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맞은 이같은 시대에서 우리들이 살아남는 법이 있을까요. 아무리 봐도 해법은 찾기 힘듭니다. 그리고 미국 중산층의 몰락은 결국 세계 제조업에도 큰 타격을 끼칠 수 밖에 없습니다.

 단기적으로, 중산층이 사회의 중심세력이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과거 소련이라는 견제세력이 있었을 때 미국이 사회적으로 중산층을 양산했던 것처럼, 다시 미국의 중산층이 양산될 수 있는 방법은 나름으로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지금과 같은 대결의 패러다임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미국 자체가 패권주의를 벗어나 그들이 세계의 일원임을 자각해야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요.

 단기적으로, 미국은 금융자본주의 중심의 경제를 탈피해 미국 자체 내의 실제적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일자리도 미국 내에서 최대한 고용을 늘려나가는 거지요. 그렇다면 가격 경쟁력이 있겠느냐는 질문이 나올 법 한데, 미국 내에서 미국 제품의 소비를 늘리도록 해야 합니다. 미국은 지금 자신들의 공장들을 해외로 이전시킨 상태입니다. 진정한 '미제'가 없는 상황이지요. 미국에서 다시 그들이 사용할 물건들을 생산해내야 합니다. 지금처럼 수입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그 비율을 리즈너블할 정도로 올려야 하고, 상품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잘 숙련된 노동자들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들의 노동자들에게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그래서 실질적인 구매력이 되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Posted by CUM[쿰;함께]

세계화/로컬화

Memo 2008/10/20 20:32

고전자본주의를 비판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자본가들은 임노동자들을 생산활동에 투여해 잉여가치를 만들고, 이를 판매해 이윤을 남깁니다. 이 과정에서 생산활동의 실제적 주체였던 노동자들에게 보다 고루 분배되어야 했을 몫들이 자본가들의 차지가 되고, 자본가는 계속해서 소유 자본을 증식시킨 후 그 규모를 확대시키려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기술의 발달과 초과생산된 산물의 판매처를 찾아 산업자본주의화된 강대국들은 원료의 공급처와 시장으로서의 식민지를 확대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전쟁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전쟁은 금융자본주의간의 전쟁으로 진화했습니다. 과거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면 돈 벌어 잘 살수 있다'는 환상을 자기네 것으로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서 자본주의는 "돈 벌려면 주식을 해야 한다"라는 식의, '돈 놓고 돈 먹기'로 완전히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금융투기로 버는 돈이 실물경제보다 더 큰 세상에서 노동으로 돈 버는 것은 바보스러운 일로 치부되어 버리고 사람들은 '이지 머니'를 쫓아다니게 됐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당연한 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주식들은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실제 가치보다 엄청나게 큰 것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그런 '허공에 뜬 돈'엔 이른바 '크레딧카드'라는 것이 한 몫 했습니다. 자기 봉급으로는 구입할 수 없는 것들도 일반인들이 '감히' 소비할 수 있게 해 주는 요술방망이 '카드'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 시민들의 소비를 과거에 비해 천문학적으로 늘려 놓았고, 사람들은 이 금융의 마술에 휩싸여 마구 써대고 긁어댔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정점에 달할 무렵 - 그것도 전세계적으로!- 그 환상은 이런 식으로 붕괴의 길을 걷게 됩니다.

몇 채의 집을 사기 위해 자기 집을 담보잡혀 받은 은행융자들이 갑작스런 집갑 폭락으로 인해 은행들이 융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자 일어난 써브프라임 사태로 시작해, 미국의 달러 과잉발행으로 인한 달러화 가치의 폭락, 이라크전쟁의 장기화, 국제유가의 급등 등 온갖 악재들이 터지기 시작하고, 실물경제가 갑자기 망가져 버렸습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달러가 허공으로 떠 버렸고, 집갑은 버블이 폭발하면서 폭락세로 이어지고, 결국 뉴욕의 주가가 1만선 아래로 추락하고... 예. 분명합니다. 지금의 사태는 꽤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현재의 세계화 지향 경제는 이제 그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합니다. 어느 나라든 로컬화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갑작스런 대책없는 세계화는 원래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준비됐을 터입니다. 그러나, 금융자본의 이동과 더불어 일반 재화들 역시 비교적 큰 규제없이 이동되면서, 이는 지금의 세계적인 중국발 먹거리 사태까지도 불러왔을 것입니다.

서로간의 식량 주권을 존중해주고, 진짜 '세계적 차원'에서 기아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하고, 생산주의에서 벗어나 큰 틀에서 사고해야 할 필요를 절실하게 느낍니다. 과장 조금 하자면, 브라질에서는 인스턴트 커피를 만들기 위해 커피만 미친듯 심고, 에콰도르에서는 바나나와 파인애플만을 길러 외국으로 수출하고, 우리가 입는 옷은 무조건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만 입고 있는 세상을 바꿔야 한단 말입니다. 생산이 오로지 수출을 위해서 존재하는 시대가 다시 도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Posted by CUM[쿰;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