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26일
전 지구적 위기
우리는 예외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미국에서 일어난 금융공황이 풍파를 일으켜 전 세계를 삼키려 하고 있다. 이 사태는 수백만 사람들의 의식을 빠르게 전환시키고 있다. 어제 뉴욕 중앙노동평의회(우리나라 노총 지역본부에 비견할 수 있는 조직)가 주최한, 천여 명 가량이 모인 시위가 있었다. 많은 수의 건설 노동자들 - 철근공, 연관공, 난방수리공, 잡부 -과 교사, 시 공무원, 및 기타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이 집회는, 열리기 겨우 이틀 전에 예고되었을 뿐이며, 그 목적은 7000억 달러라는 엄청난 규모의 공적 자금을 제공하여 월 스트리트를 구제하려는 부시 대통령의 계획에 대해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로이터 통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항의 내용은 이러했다:
“안전모를 쓴 사람들, 대중운송 노동자, 기계공, 교사 및 기타 노동조합원들이 지난 목요일 미국 정부가 월 스트리트를 구제하기 위해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계획한 데 대해 뉴욕 증권거래소로부터 도보로 시위를 하면서 격하게 비난했다. 갚지 못하는 부채를 지니고 있는 금융기관들을 구제함으로써 신용시장을 재활성화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정부가 7천 억 달러를 제공하는 계획을 제안한 데 대해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비난하자 수 백 명의 시위군중은 열렬하게 지지의 함성을 질렀다.
“부시 행정부는 우리의 위기의 근원에 대해 손대기 시작조차 하지 않는 월 스트리트 긴급 구제금융에 대해 우리가 그 부담을 지기를 바라고 있다.”고 AFL-CIO 존 스위니 위원장이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낸 세금을, 과분하게 고액의 봉급을 받고 있는 특권적인 경영진 떼거리들에게 기부하는 데 쓸 것이 아니라, 중심가(교외가 아니라: 역자)에 살고 있는 수백 만 노동자 대중에게 보탬이 되게 사용되기를 바란다.”
“현수막에는 ‘월 스트리트에 대한 백지수표 반대’와 ‘우리가 어렵게 번 연금이 약탈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시위군중은 신이 난 듯이 정부가 돈을 교육, 보건·의료 및 주택에 쓸 것, 월 스트리트를 위해 쓰고자 하는 만큼이나 아낌없이 그리고 흔쾌히 쓸 것을 거듭 요구했다.
‘우리는 경제 상황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편의적인 구제금융이 아니라 책임성 있는 구제책을 원한다.’고 합동교사연맹 랜디 웨인가튼 위원장은 말했다. 그는 또 ‘그리고 그것은, 모든 학교 교장들이 나에게 한결 같이 교사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과 똑같이, 월 스트리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시위군중의 분위기는 격앙되어 있었다. 많은 호응을 받은 구절은 구제금융이 단지 부자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내용으로 될 경우, 총파업을 요구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노동계급의 의식에 있어서 큰 변모가 일어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미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 세기에 한번 있는 사건”
최근 몇 달 동안에 금융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근래의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전에는 경기침체의 가능성을 부인하던 바로 그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60년 만에 가장 심각한 위기라는 말을 입에 올리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금융위기에 대해 “아마도 한 세기에 한 번 있을 사건”이라고 묘사했다.
그들이 말하는 기간(60년 만이니 한 세기니 하는: 역자)은 실제로 79년이다. 1948년 이래 위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며, 1929년에 대해 언급하기를 겁낸다. 이는 마치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떤 달갑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 자신들의 신의 이름(야훼: 역자)을 입에 올리기를 겁내는 것과 꼭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모두 시장에서의 신뢰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호경기와 불경기의 진정한 원인은 신뢰(또는 그것의 부족)이라고 열렬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신뢰의 상승과 하락은 현실의 조건들을 반영한다. 비록 신뢰의 상승 및 하강이, 그 조건들을 반영한 다음에, 이 현실적 조건들의 일부가 되어 시황을 끌어 올리는 데 - 또는 이번 경우처럼 끌어 내리는 데 -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말이다.
지난 두 달 사이에 AIG, 베어스턴스, 패니메이, 프레디맥, 리먼브라더스, 메릴린치, 등 무너지기에는 너무 크다고 생각되어 왔던 회사들이 모두 파산하거나, 정부의 자금지원으로 “구제”되거나, 아니면 국유화되거나 했다. 경제위기의 심각성이 사람들 눈에 점점 분명해지면서 오랜 기간 동안 찾아볼 수 없었던 종류의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오늘 아침(9월 26일) 워싱턴 무츄얼이라는 미국 은행 또 하나가 무너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미 정부가 이 은행을 문닫도록 했다고 한다. 이는 미국 은행의 도산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도산이었으며, 이 은행의 금융자산은 J.P.모건 체이스 은행에 19억 달러(10억 파운드)에 매각되었다. 이번 사태는 국토를 싹쓸이하는 쓰나미에 비견할 수 있는 금융권에서의 쓰나미이다. 뿐더러 이 쓰나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제학자들의 추정은 부단히 아래로 수정되고 있다. 6개월 전 IMF는 금융부문에서 1조 달러(6,910억 유로, 5,460억 파운드) 이상의 손실이 날 것이며, 전 지구적으로 격심한 경기 후퇴가 올 것으로 예측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이 예측이 너무 비관적이라고 비판했었다. 그러나 그 경제학자들은 지금 논조를 싹 바꾸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 지에서 도미니크 스트라우스 칸은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러나 아직 실현되어야 할 손실들이 많이 있고, 금융위기가 매우 심각한 상태에 있는 만큼, 체계 차원의 해법 - 당면의 재난에 맞서 씨름하는 데 있어서 포괄적면서, 동시에 근본 원인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포괄적인 - 에 근접한 대책이 강구되어야만 [금융부문만이 아니라] 경제 전체 - 미국과 전 지구적으로 - 가 ‘정상 상태’ 비슷하게라도 기능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파이낸셜 타임스> 2008년 9월 22일)
그렇다. 미국 경제는 실로 더 이상 ‘정상 상태 비슷한 것’(semblance of normality)을 지니고서 기능하지를 않고 있다. 사실상 미국 경제는 끽 소리를 내며 급정거 하고 있다. 월 스트리트에 관한 한 그렇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미국의 금융시장은, 거대한 규모의 정부 재정 지출 - 정부 당국의 희망에 따르면, 이 돈이 시장의 ‘신뢰를 회복’시켜 줄 것이다. - 이 확정되기를 기다리고 있고 있는 가운데, 사실상 마비 상태에 있다. ‘자유 시장’이 자신의 생존 자체를 위해 미국 납세자들의 거대한 의연금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 자신의 완전한 파산 - 이 단어의 가장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을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라고 할 것이다. 여기에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사기업 정신, 및 그 밖의 모든 것들에 관한 모든 수사들에 대한 최종 대답이 있다. 진실의 순간에 월 스트리트 및 런던 시티의 대담하고 용감한 사업가들은 거지와 같이 손에 모자를 들고 정부로 찾아가서는 사회보장을 요청해야 한다. 다만 이 거지들은 억만 장자들이라는 점과 돈을 달라고 협박한다는 점이 특이할 따름이다.
열렬한 자유시장 주의자들에 의해 이끌려지고 있는 미국 공화당 정부가 주요 투자은행들을 국유화하고 지금, 혹은 미 재무부가 1조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보조금을 투자은행에 넘겨주고 있는 지금, 어떤 “정상 상태 비슷한 것”이 남아 있는가? 지난 일요일 모건 스탠리와 골드만 삭스는 단 두 개의 독립적인 투자은행으로 남겠다는 시도를 단념했다. 그 대신 은행예금에 대한 확대된 접근성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유동성 지원에 대한 항구적인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은행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월 스트리트에서 가장 명성 있는 이 두 기관이 사라졌다는 것은 이번 위기가 극히 심각함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모건 스탠리가 자본을 구하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갔다는 사실도 세계의 부가 얼마나 빨리 미국으로부터 이탈하고 있는지를 뚜렷이 보여주었다.
의회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미 재무장관 헨리 폴슨(몇몇 논평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그는 지금 사실상의 미국 대통령이다.)은 사납게 몰아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시장은 계속 추락하고 있고, 누구도 그 추락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의회에서 거듭 되풀이 되는 또 하나의 주장으로서 ‘당신들은 우리에게 이 어마어마한 돈을 아무런 감독이나 담보물도 없이 넘겨주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있다. 이 자금 지원이 은행가들이 저지른 큰 경영실패에 대해 포상을 하는 것이라는 점은 차치하고서도, 이것이 시장의 추락을 멈추게 하는 데 다소라도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누가 과연 장담할 수 있는가?
이것은 훌륭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 폴슨도 부시도 또는 그 누구도 어떠한 답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지난날 자유시장의 신성함을 옹호하던 변호론자들이 지금에 와서 시장을 그 자신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꼴을 보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자신들의 논리에 의해 부정되고 있는데, 그것은 자유시장 경제라는 어리석은 논리일 다름이다. 지금의 금융위기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오래 전부터 예고되어 왔던 것으로서, 장기간에 걸친 통제되지 않은 투기 - 이 투기가 사상 최대의 거품을 만들어 냈다 - 의 직접적 결과이다.
지난 금요일 미 정부가 금융부문에 7천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할 계획임을 발표하자, 시장은 환호했다. 그러나 그 직후 미국 하원이 이 대규모의 기부에 대한 승인을 지체시키자 이런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월요일가지만 해도 달러 가치는 월스트리트의 소동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잘 버텨내었다. 그러나 달러 가치는 구제금융의 비용과 미 은행체계의 부서지기 쉬운 상태에 대한 염려로 인해서 결국 추락했으며, 미 달러로 표시되는 상품들의 가격을 치솟게 했다. 달러는 주요 통화들의 바스켓에 비해 그 가치가 2% 떨어졌으며 유로는 2.6% 상승하여 1유로에 1.48%가 되었다.
석유 가격은 미친듯이 오르락 내리락 하며 심한 불안정성을 보였다. 달러 가치가 떨어짐에 따라 주가도 폭락했다. 그리고 유가도 이전의 가파른 하락에 뒤이어 다시 폭등했다. 9월 22일 월요일 유가는 17%나 상승했는데 이는 하루 동안의 유가 상승으로는 전례가 없을 만큼 가장 큰 폭의 상승이었다. 이는 이라크 침공 때 있었던 상승보다도 큰 폭의 상승이었다. 화요일이 되자 유가는 다시 배럴당 3달러가 떨어져서 106달러가 되었는데, 에너지 가격이 계속 떨어질 것으로 예상할 충분한 이유들이 있었다. 이 격렬한 진동은 확실히 한편으로는 달러가치의 변동을 반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상품투기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활동을 반영한다. 최근에 이르기까지 자본가들은 주택시장에서 투기를 했다. 이 주택시장이 무너지자 그들은 석유, 미술품, 식량 등 수익성이 있을 법하게 보이는 그 밖의 것, 이용해 먹을 다른 분야들을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규제에 대한 온갖 불평과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 투기는 제어될 수 없다. 이것은 히드라와 같다. 하나의 머리를 자르면 열두 개의 다른 머리들이 출현하는 히드라 말이다.
사회주의 - 부자들을 위한
경제적 및 사회적 격변의 결과 많은 사람들은 이같이 혐오스러운 결과를 산출해 낼 수 있는 현 체제의 본성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 자체가 금융기관들을 국유화하도록 강요될 때, “우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은행가와 자본가를 필요로 하는가?”라는 생각이 점차 일반화될 것이다. 이런 까닭에 정치인들은 악마가 물을 기피하듯이 국유화라는 단어를 기피하는 것이다. 그들은, 국유화라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 방식으로 국가가 은행에게 자본을 제공할 수 있는 방도를, 어떠한 대가를 치루고서라도 기필코 찾아내고자 한다. 그들은 소유권과 통제권을 사적 개인의 손에 남겨두는 자본형태를 찾아내고자 분투한다. 그러나 그들은 종국에 가서는, 병든 은행들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자신들의 의지에 반하게 어쩔 수 없이 이 은행들을 인수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경제의 핵심 부문에서 사적 소유가 유죄임을 확증시켜주는 통렬한 고발장이다.
비록 역설적으로 보일 지 모르지만, 정치인들이 시장의 죄악과 금융업자들의 탐욕에 대해 가장 소리 높여 질타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자유기업의 나라, 자본주의 심리가 사람들의 가슴 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나라가 아마도 대기업에 대한 반발이 가장 첨예한 나라가 아닐까 한다. 이런 사실은 정치인들의 연설 그 중에서도 특히 대통령 후보자들의 연설에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공화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보다 웅변술의 면에서 볼 때 목청이 한층 더 높다. 이는 그가 선거에서 꼭 이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메케인은 대기업 중역들에게 터무니없이 엄청난 보수가 지급된 것에 대해 그리고 월스트리트에서 수치스러운 투기가 이루어진 것에 대해 민심의 반작용이 있다고 보고 있으며, 그래서 대다수의 서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멸한 베어스텐스의 중역들이 그 은행을 무너지게 만든 무모한 사업전략을 추구하면서 어마어마한 재산을 긁어모으고 있었다는 것은 실로 엽기적이 아닐까? 또 그 대부분이 부자가 아닌 미국의 납세자들이 어째서 거대 금융기관들을 구제하기 위해 7천 억 달러를 부담해야 하는가? 2007년 9월 30일 현재로 연방정부는 53조 달러의 (누적)재정적자를 안고 있었다. 이 금액은 가구당 45만 5천 달러, 한 사람당 17만5천 달러에 상당한다. 이 부담은 매년 한 사람당 6천6백 ~ 9천9백 달러씩 늘어나고 있다. 이 적자 가운데 메디케어(노인의료보장제도)에 관련된 것이 3조4천억 달러이며,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유관 메디케어 신탁기금은 10년 이내에 재원이 바닥이 날 예정으로 있다. 사회보장 프로그램은 약 10년이 되기 전에 역의 현금의 흐름이 마이너스로 될 판이다. 누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든 누가 의회를 지배하든 생활수준의 커다란 저하를 관장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연방 준비제도이사회로부터 천문학적인 돈을 가져간 바로 그 자본가들이 강경한 예산통제, 연방정부 지출의 삭감, 핼스캐어 수혜자격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축소)를 요구하고 있다.
매디캐어나 학교나 노인연금을 위해 쓸 돈이 없다. 그러나 대 은행이나 살찐 고양이들을 위해 쓸 돈은 많다. 이 명약관화한 모순은 수백만 명의 보통 미국 사람들의 의식 속으로 파고들어가고 있으며 향후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무거운 빚이 다음 세대의 어깨 위에 무담으로 얹어질 것이며, 그들은 생활수준의 저하와 사회보장의 삭감 등으로 비싼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이것은 불가피하게 의식의 심대한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 교훈은 미국 공중에게 잊혀지지 않고 있다. 학생들이나 아픈 사람들이나 나이든 사람들에게 돌아갈 돈은 없으나 대기업(은행업보다 더 큰 기업은 없다.)이 문제로 될 때에는 국가가 수표책을 들고 득달같이 달려온다. 가난한 사람들의 곤경에 대하여 부시 정부는 오직 경멸을 보였을 뿐이다. 자유의 땅에서 시민은 누구나 부자가 될 권리가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계속해서 가난하다면 이는 오로지 그 자신의 잘못 때문이다! 그들로 하여금 약간의 창의성을 발휘하라고 시키거나 아니면 시궁창에 기어들어가서 죽게 하라. 그것이 공화당의 자유시장 메시아들이 보내는 준엄한 메시지이다. 그러나 최상층 부자가 문제로 될 때에는 조지 W 부시는 상냥한 관심을 보인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참으로 이렇게 적혀 있기 때문이다: “그가 누구든 가진 자는 더 많은 것을 받게 될 것이며, 받아서 넉넉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지지 못한 자는 누구든 그가 가지고 있는 것조차 빼앗기게 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부시 대통령은 성경책을 확고하게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금융위기에 개입하는 동기가 전적으로 기독교적 자선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의심하고 있다. 그것은 필사적 노력과 더 관련이 있었다. 미국의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발 아래에서 심연이 열리는 것을 보았으며, 전 지구적 경기침체를 피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 가운데 공황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강요되었던 것이다. 자유시장에 대한 열렬한 신봉자인 대통령이 7천억 달러에 달하는 납세자의 돈을 은행들에 던져주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은 바로 이것이다.
이 획기적 조치는 즉각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시장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G7의 공업국들은 “미국이 취한 특단의 조치를 강력히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투매(投賣)된 자산들을 사기 위해 그들 자신의 기금을 만들 필요를 아직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유럽과 여타 지역의 자본가들은 수수방관 하면서 미국 사람들이 부담을 지는 것을 기꺼워하고 있다. 결국, 이 소동의 단초를 만든 책임이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똑같은 질문이 미국 안에서도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어디서나 - 그리고 의사당 안에서도 -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은 즉각 미국 의회라는 형태로 하나의 문제를 건드렸다. 의원들이 자본주의가 살아남게 하는 일에 있어서 현재 백악관 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덜 헌신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의원들은 자신들이 살아남는 데에 더욱 헌신적이다. 그들은 자본주의, 시장, 은행가들, 월 스트리트 및 그들의 소행 모두에 대한 반발 기운이 커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기부(왜냐하면 그것은 비로 이것이므로)가 무한대임이 자명하다. 이는 미국 납세자 한 사람당 9천4백 달러에 상당하는 돈이 주머니에서 빠져나가서 금융위기를 야기한 첫 번째 당사자들 바로 그 사람들의 계좌로 옮겨감을 의미한다. 이 사실이 의회의 의견을 놀랍게도 한곳으로 모아지게 하고 있다. 특히 선거가 멀지 않았다.
민주당 측은 미국 경제를 재생시키기 위해 사회간접자본 지출 증가, 가정 난방비 지원, 소비자들에 대한 환불수표(rebate cheque) 증발 등을 중심으로 하는 제2 라운드의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해 왔다. 그러나 행정부와 공화당 측은 이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은행가들을 위해서 돈을? 물론이지! 그러나 보통 미국사람들을 위해 돈을? 죄송하지만 - 돈이 없어! 이것은 국회의사당에 계신 점잖은 분들, 불철주야 나라의 이익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는 분들에게는 아주 벅찬 일이었다.
능히 예상할 수 있듯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는 한 연설에서 깊은 우려를 나타내면서, 은행이나 모기지 중개업자 자격증이 아니라 그 기관의 활동에 의거해서 규제하는 방향으로 금융규제를 현대화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어떠한 감독이나 책무성도 없었던 것이 지금과 같은 혼란으로 우리를 몰아넣었던 일차적 원인인 만큼, 우리는 아무런 감독이나 책무성 없이 워싱턴 당국에게 백지수표를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아마도 공화당 측 대통령 후보의 반응일 것이다. 그는 분명 자신의 경쟁자보다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결국, 말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으며, 지금은 선거의 해이다.) 메케인은 이렇게 말했다 : “이 조치는 나를 심히 불편하게 한다.” “우리나라 역사상 그렇게 큰 돈과 권력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켜 준 전례가 없다. 우리가 1조 달러에 달하는 납세자들의 돈을 놓고 이야기하고 있는 마당에, ‘나를 믿어라’라고 말하는 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메케인은 한술 더 떠서 공적자금으로 구제금융을 받는 기업의 중역들에게 연봉으로 40만 달러 이상의 보수를 지급하지 못하게 하자는 민주당 측의 요구에 지지를 표했다. 이것은 부시 행정부의 입장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그 같은 보수 상한제는 이 조치에 대한 은행들의 참여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원과 상원에 있는 다선 민주당의원들은 보다 엄격한 감독을 포함한 일련의 제안들을 회람시켰다. 이 일련의 제안들에는 이 구제금융 계획안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지분에 정부가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거나 요구하는 것, 파산 심판관이 저당권의 장부가격을 삭감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 자산을 정부기금에 파는 은행에 대하여 중역들의 보수를 제한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재무장관 폴슨은 보수 제한과 지분을 정부에 넘기는 것을 은행이 자산을 정부기금으로 파는 데 대한 전제조건으로 하자는 이 제안들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 근거로 그는 그런 조건들을 부칠 경우 파산 직전의 은행들만이 이 계획에 참여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갈등과 그리고 은행들에게 넘겨주는 돈에 대해 더 많은 통제를 가하라는 민주당 측의 요구가 교착상태와 지체를 초래했고, 이 지체가 또 한번 시장을 뒤집어 놓았다. 결국 시장이 요구했을 때, 요구는 관철되었다. 나라의 선출된 대표들은 더 이상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 금융시장의 위기를 해결하고자 제출된 구제 법안을 조속히 이행하라”고 의회에 요구했다.
그러나 의회는 여론의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런데 앞에서 우리가 보았듯이 여론은 비등점을 향해 들끓고 있다. 의원들에게는 전화와 이메일이 폭주하고 있다. 이런 전화와 이메일에서 유권자들은 부자들에게 기부하는 괘씸한 짓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그들이 이런 분위기를 무시한다면 큰 화를 자초하게 된다! 그래서 의원들은 이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기를 주저해 왔다. 의회는 행정부가 자신들을 이같이 난처한 처지로 몰아넣은 데 대해 비난하고 있다. 대통령은 의회가 미국 경제를 붕괴로부터 구할 법안을 처리하지 않고 보류하고 있는 데 대해 비난하고 있다. (부시는 국민에게 전례 없는 텔레비전 메시지에서 정확히 바로 이러한 단어들을 사용했다.)
의사당에 노기가 너울거리며 타올랐다. 의원들은 서로 맞고함을 치며 거의 치고받기 직전까지 갔다. 의사당에 그런 장면이 연출된 것을 본 기억이 있는가? 그러면, 미국 경제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미국 국민이 이처럼 반역적이고 노기찬 마음상태가 된 것을 본 기억이 있는가? 의회가 그 같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이유는 자신들의 뒤켠에 불길이 타오르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금 무엇을 하든 잘못을 범할 것이다. 만약 그들이 구제금융 법안에 찬성한다면 수백만 명의 보통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살 것이다. 어제 밤 영국 텔레비전과 인터뷰 한 한 여성은 이 구제금융 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지금 막 11시간 교대근무를 마치고 나오는 참이다. 아는 한 주일에 60시간 일을 한다. 그런데 그들은 나의 월급에서 2,300달러를 떼어서 은행가들에게 주려고 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심정의 전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만약 의원들이 서명을 거절한다면, 이로 인해 미국 주식시장은 더 급격하게 추락할 것이다. 그리하여 1929년과 같은 완전한 붕괴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진퇴양난의 궁지에 빠져 있는 것이다.
부르주아지의 비관주의
부르주아지는 주기적으로 조울증의 발작에 시달린다. 극단적인 낙관주의로부터 깊은 절망으로 빠르게 오락가락한다. 대서양의 양측에서는 지금까지 “무분별한 활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어둠과 죽음이 만연해 있다. 세상은 매양 그러했다. 부르주아지는 항상 조울증의 두 극단 사이를 오간다. 한 순간 파티가 한바탕 신나게 벌어지고 떼돈이 굴러들어와 부자가 된다. 그러나 다음 순간, 모든 것이 쭈그러들고 불행이 충만한다. 마침내 붕괴가 도래하면, 난잡하게 한바탕의 파티가 있은 다음날의 아침과 같이 썰렁하다. 어제 밤, 사람들은 이 세상에 대해 어떤 근심도 없이 행복에 취해 있었다. 그러나 아침이 되고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보니 이야기는 완전히 딴판이다. 남녀들은 지난밤의 자신들의 잔치가 과했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깨닫는다. 그들은 두 번 다시 독주를 과음하지 않겠다고 엄숙하게 맹세한다. 그리고 그들은 한 동안 아주 이 맹세를 성실하게 지킨다. 단 다음 파티 때까지.
최근의 투기 붐의 불명예스런 붕괴는 일반적 규칙(rule)의 예외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지금 아찔하게 높은 곳에서 가파르게 추락해야 한다는 점에서만 특기할 일이다. 이것은 역사에서 가장 큰 투기 붐(거품)이었다. 이것은 예전의 월가 붕괴를 초래한 붐보다 훨씬 컸다. 그러나 위기의 분명한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아직 ‘사태는 더 악화될 수 있었다’는 생각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최근 기사는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대불황은 80년 전에 시작되었지만 우리는 다른 세기를 살고 있다. 이것이 이번 세기에 세계가 직면할 최악의 격변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대불황만큼 나쁜 것이 1930년대와 지금 사이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하다.” 이 논평은 두 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1929년의 대불황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부인했던 동일한 사람이 그것은 가능할 뿐 아니라 여지껏 없었던 대단한 것이라고 말한다.
도미니크 슈트라우스 칸은 이렇게 썼다. “(....)그리고 더 규모 큰 경제에 적어도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것, 심각한 침체의 개시에 대해. 아마 그것은 주택 버블의 폭발을 ‘정정(correction)’으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디폴트/파산을 단지 불행으로, 중요한 금융기관들의 실패를 부수적인 피해쯤으로 간주함으로써 대다수 사람들을 달래주는 ‘후자’의 부재였을 것이다.
위기시의 가격 하락은 단지 앞서 일어난 인플레를 바로잡을 뿐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교정(correction)’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경제 슬럼프를 실제보다 덜 심각한 것으로 나타내기 위해 어떻게 그 용어법을 계속 바꾸어 왔는지 오래 전에 지적한 바 있다. 어떤 경우에는 ‘패닉’이라 불렀다가 다음에는 ‘슬럼프’로, ‘depression(불황)’, ‘recession(침체)’로 거듭 바꿔 부르다가 최근에는 ‘교정’이라 개칭했다. 결국 우리가 시장이 (아무런 인간의 의식적인 참여 없이도 마술적인 조절 기술에 의해) 위기를 기적적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어떻게 우리는 스스로 정정하는 시장을 반대할 수 있을까?
“지진도 단지 지각을 재조정할 뿐인 필수적인 ‘교정’으로 표현될 수 있다. 점점 그것은 가라앉고, 생활은 여느 때처럼 굴러간다. 그러나 이 만족스런 분석은 지진이 초래한 끔찍스런 피해의 여파를 계산에 넣지 않는다. 파괴된 마을, 뿌리 뽑힌 나무, 쓸려 가버린 농작물, 죽거나 다친 사람들. 게다가 정상적인 생활의 복구는 간단하지 않다. 너무나 타격이 심한 곳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복구되지 못한다.”
이 글은 이 교정의 결과를 정확하게 서술한다.
금융 자본의 독재
우리 시대는 독점 자본주의 시대이고, 그 특징의 하나는 금융 자본의 완전한 지배다. 이 지배는 영국과 미국이 가장 앞서 있다. 한때 세계의 공장이었던 영국은 생산은 거의 없고 금융과 서비스만 발달한 기생적인 금리생활자 경제로 바뀌었다. 최근까지 이것은 나름으로 긍정적이라고 보였는데 불안한 세계 경제 속에서 영국을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미국 모델을 노예처럼 추종함으로써 미국을 뒤따라 침체의 늪으로 빠져 들었고, 최악의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숙주들의 희생을 대가로 하여 성장하는 기생충처럼 금융부문이 지나치게 비대해져서 영국 경제를 약화시키고 있다.
올라가는 것은 내려가기 마련이다. 여러 해 동안 미국 경제는 경제의 중력법칙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그 가격이 지불되어야 한다. 이제 현실화된 ‘(가격) 하락’은 그동안 주택부문의 투기로 하여 현기증 나는 높이까지 올라갔었기 때문에 더 가파르다. 이미 대불황때의 집값 하락보다 폭이 크다. 2008년 1/4분기에 미국 집값은 공식적으로 14.1% 내려갔다. 1932년 불황의 저점에서는 이와 대조되게 집값이 10.5% 떨어졌다. 게다가 이들 숫자는 그 포지션의 실제적인 심각성을 전달하지 않는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1/4분기 집값 16% 하락이라는 숫자를 실질 가격(in real terms)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집값 하락은 끝나지 않았다.
이것은 은행가들에게 던져진 거액의 화폐가 하락을 막는 데 효과가 없거나 고작해야 더 가파른 하락이 일어나기 전의 일시적 유예에 불과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자기 자신의 법칙 외에는 따르지 않는 시장의 논리이다. 이른바 ‘안정화’ 플랜은 그런 것이 아니다.
시장 규제에 대한 온갖 담론은 커다란 난센스다. 자본주의 체제는 그 본성이 무정부적이다. 계획될 수도, 규제될 수도 없다. 거대한 현금을 투입하여 금융 부문을 안정화하려는 시도는 큰 부자를 더 부유하게 만드는 데만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장에서 지속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은행가들의 오만함은 매우 경악스럽다. 그들은 정부에게 자기들의 악성 채무를 사달라고 요구하는 한편, 자기들의 수익성 있는 자산은 꼭 움켜쥐고 있다. 이들 자산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포켓(또는 자루) 속에 들어 있는 돼지는 사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이것은 민감한 충고인데, 정부는 자루 속을 들여다 보지도 않고 부르주아에게 거액의 돈을 건네도록 요구받고 있다.
은행 시스템의 위기는 지난 20년간 모든 은행가들이 즐겁게 참여한 대규모 사기의 결과다. 이 속임수는 그들에게 믿어지지 않는 부를 안겨 주었지만 지금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에는 거액의 빚과 가공 자본이 남아 있다. 이 작은(little)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쉽게! 청구서(bill)를 납세자에게 건네 줘라. 이들 자산을 사들일 기관을 정부가 세우고, 그것들이 “익을(mature)” 때까지 보유하고 있으면 사적 부문에 되팔 수 있다. 이것은 손실을 국유화하고 이익을 사유화하는 것이다. 아니면 고르 비달의 멋진 표현을 써서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와 빈자를 위한 자유시장경제다!
자본가들은 그들도 희생을 치른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의미하는 것은 그들의 팽창한 수익 중의 작은 일부를 희생한다는 것이고 그 반면에 노동자들은 그들의 생계와 집을 희생한다. 은행가들은 고통으로 울부짖고, 정부는 열린 수표장을 손에 쥐고 달려 들어온다. 은행가들은 그들의 병을 치유할 거대한 현금 수혈을 요구한다. 이것은 ‘유동성 조항’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정부가 어떤 유동성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세금으로 걷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징세는 수요를 감퇴시키고, 이미 미국에서는 수요 하락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일시적으로 큰 부자들의 고통을 덜어줄 지 모르지만, 보통 미국사람 수백만 명의 고통을 늘리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시장’이라는 더 큰 대의 속에 고통을 감내할 애국적인 미국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별로 근심할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인내는 경제에 더 심각한 효과를 초래한다.
수요가 더 줄어들면 실업이 늘어나고, 회사들이 무너진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기지와 신용카드 빚으로 파산할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위기가 더 깊어지고 해결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게다가 최근에 미국은 세계최대 채권자에서 최대 채무자로 전락했다. 정부가 투매자산을 사들이고 금융기관에 자본을 대줌으로써 집합적(collective) 채무가 방대하게 늘어났다. 이는 타국 화폐에 대해 달러 가치의 하락과 세계 화폐시장에 더 큰 격변(convulsion)을 초래할 것이다.
중앙은행들은 은행예금이 안전하다는 것을 예금자들에게 재보증하고 우량 담보물을 보유한 금융기관들에게 유동성을 제공함으로써 예금 인출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도록 요구받는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자원(resource)에는 한계가 있고, 점점 그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마 그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다 했을 것이다. 새로운 은행 위기가 일어난다면 감당하기 어렵다. 얼마나 많은 악성 채무가 세계금융시스템에 해를 끼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다음의 위기는 불가피하게 일어난다. 1931년 5월 오스트리아 최대은행 크레디트-안슈탈트의 붕괴처럼 세계경제에 치명적인 쇼크를 일으킬 주요 은행 몇 개의 붕괴가 조만간 일어날 수 있다. 크레디트 안슈탈트 은행의 붕괴는 월가가 무너진지 2년반 뒤에 일어났고, 이는 중앙유럽과 그 너머까지 금융붕괴의 서곡이 되었다. 다음 시기에 그 비슷한 현상을 볼 것은 너무 명약관화하다.
맑스의 가공자본
현금 부족이 위기를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위기가 현금 부족을 초래했다. 은행가의 심성을 품은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원인과 결과를, 현상과 본질을 혼동한다. 경제가 위기로 진입하면 신용이 말라붙고 사람들은 신용 대신에 경화를 요구한다. 이것은 위기의 결과(효과)이지만 그 결과가 수요 감퇴와 하락(downward spiral)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은행가와 그들의 정부 동료들은 금융시스템에 자본이 부족한 것이 위기의 원인이라고 우긴다. 이것은 놀라운 진술이다. 지난 20년 동안 방대한 화폐창출 카니발이 있었고 이를 통해 은행들은 거대한 수익을 올렸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충분한 자본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붐이 일어난 동안 거대한 대부자본이 순환되었고, 남아도는 자본들이 자본주의 생산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출구를 찾지 못한 자본들이 투기에로 흘러들었다.
맑스는 오래 전에 부르주아의 이상은 고통스런 생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돈으로 돈을 버는 것이라고 갈파했다. 최근 그들은 (생산력의 실질적인 발전이 있었던 중국을 제외하고) 이 이상을 실현한 것으로 보였다. 미국, 영국, 스페인, 아일랜드와 그밖의 여러 나라에서 은행들은 막대한 돈을 투기에, 특히 주택 부문에 투입했다. 상상할 수 없는 양의 가공자본을 낳으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스캔들이 일어나고 번창한 기초는 이것이다.
이미 맑스 시대에 거액의 순환 자본이 있었다. 이것이 가공 자본의 기초를 이루는 자본이다. 그 시대에 오늘날의 파생상품에 맞먹는 신용 사기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포지션과 비교했을 때, 과거의 투기는 하찮은 것이다. 세계 전체로는 투기 액수가 들쭉날쭉했다(staggering). 신용부도스와프 산업만 예로 들자. 이 시장은 두 상대방(party)에게 회사가 빚으로 도산할 가능성에 배팅하는 것을 허용한다. 이것은 보험에 든 장부상의 액수(notional amounts)로 90조 달러 규모까지 성장했다. 말하자면 전세계 신용잔액(outstanding credit)의 두 배가 넘는 것이다!! 그러나 계약은 파트너의 장부에만 등록돼 있다. 아무도 실제 거래량을 모르고, 그래서 세계 경제를 거대한 위험에 노출시킨다. 그것이 월가와 백악관을 덮친 패닉을 설명해준다. 어떤 (심각한) 쇼크라도 예견할 수 없는 결과로 국제 금융의 불안정한 건물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그들은 (당연하게도) 두려워한다.
19세기에조차 붐의 정점에, 신용이 원활하고 신뢰가 높아졌던 때에 대부분의 거래가 실제 현금 없이 이뤄졌다. 사이클이 시작될 무렵에는 자본이 풍부했고 이자율이 낮았다. 낮은 이자율이 기업의 수익률을 일찌감치 높이고 성장을 촉진했다. 그 뒤로 번영의 절정기 동안 이자율은 평균 수준에 도달한다. 신용에 대한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이자율은 붐의 절정기에 인상되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의 붐에서는 이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최근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이자율을 낮게 유지하는 정책을 신중하게 추구했다.(한때는 인플레 수준에 비추어 실질적으로 마이너스(negative)가 되기도 했다). 이것은 정통 자본가의 관점에서는 무책임한 것이었다. 이는 주택 버블을 만들어냈고 그리하여 최근 위기의 기초를 놓았다. 그러나 막대한 수익이 만들어지고 투자자가 행복해 하는 한, 아무도 근심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화폐 창출의 이 미친 카니발에 즐겁게 참여했다. 가장 존경할만한 은행가들과 가장 학식 높은 경제학자들이 손을 맞잡고 “먹어라, 마셔라, 그리고 행복해져라. 우리가 죽을 내일을 위하여!”하는 합창에 맞춰 춤을 추었다.
그들이 ‘자본이 부족하다’고 지금 불평하는 이유는 그들 자산의 큰 부분이 (금융 부문에서 전례 없는 속임수의 결과로) 가공의 것이기 때문이다. 붐이 계속되는 한, 아무도 괘념하지 않는다. 그러나 붐이 무너진 지금, 이 자산들 모두는 정밀조사(scrutiny)에 들어갔다. 어제는 서로 거대한 액수의 채무를 사들일 태세가 되어 있던 은행가들이 더 이상 그럴 생각이 없어졌다. 불신과 의심이 만연했다. 빌리고 빌려주는 것에 대해 옛날의 태평스런 낙관주의가 인색한 태도로 돌변했다. 자본의 순환이 의존하는 전체 은행 시스템이 서서히 멈추고 있다.
모든 불량 자산이 제거되지 않는 한(제거될 때까지) 많은 기관들이 경제에 건전한 신용을 제공하기를 버거워할 것이다. 맑스는 오래 전에 경제 사이클의 이러한 국면을 서술했다.
“위기시에 지불 수단이 부족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교환 화폐의 태환성이 상품들 자체의 변형(metamorphosis)을 대체하고, 그런 시절에는 훨씬 더 많이 틀림없이 회사의 더 큰 부분이 순수 신용으로 운영된다. 1844-45년의 입법처럼 무지하고 잘못된 은행 입법이 이 화폐 위기를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은행 입법도 위기를 제거할 수는 없다.”
"재생산 과정의 전체 연속이 신용에 의존하는 생산 체제에서 위기가, 즉 지불 수단의 거대한 인출 요구(rush)가 명백하게 일어난다. 신용이 갑자기 멈추고 현금 지불만이 효력을 발휘할 때에. 얼핏 보기에 그러므로 전체 위기는 단지 신용과 화폐의 위기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은 교환화폐의 현금으로의 태환성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이들 화폐(bill)의 대부분은 실질적인 판매와 구매를 나타내는데 사회의 필요를 넘어서는 그 확장은 결국 전체 위기의 기초가 된다. 동시에, 이들 교환 화폐(bill)의 막대한 양은 밝은 대낮에는 무너지기 마련인 명백한 속임수를 나타낸다 ; 게다가 다른 사람들의 자본으로 벌이는 성공적이지 못한 투기 ; 결국 평가절하되거나 전혀 팔리지 못하는 상품자본, 또는 다시 실현되지 못하는 순환(return). 재생산 과정의 강제된 확장의 모든 인공적 체제는 물론 잉글랜드 은행 같은 몇몇 은행이 가공(페이퍼)으로 옛 정상(nominal) 가치로 모든 평가 절하된 상품을 사들여서 모든 협잡꾼들에게 부족한 자본을 대주는 것으로는 치유될 수 없다. 게다가 이 가공(페이퍼) 세계에서 실질 가격과 그 실질적 기초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고 다만 금괴, 금속 주화(coin), 어음(note), 교환 증서(bill), 증권만 등장한 이래로 모든 것은 여기서 왜곡되어 나타난다. 특히 한 나라의 전체 현금 사업이 집중되어 있는 런던 같은 중심지에서는 이 왜곡이 분명해진다. : 전체 과정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 생산의 중심지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덜하다(자본론 3권 30장, 화폐자본과 실질자본 1)”
자본가들은 이 모든 가공 자본을 시스템에서 제거해야 한다. 신체가 부패한 사람처럼, 아니면 마약 중독에서 헤어나려는 사람처럼 신체에서 독을 빼지 않으면 죽는다. 시스템이 움츠러들고 신용이 말라붙음에 따라, 자본가들은 빚을 회수하고, 지불할 수 없는 사람은 도산한다. 그리하여 실업자가 늘고, 이것이 또 수요를 감소시켜 새로운 붕괴, 갚지 못하는 새 채무를 초래한다. 이런 식으로, 최근 시기에 경제를 상승시켰던 모든 요인들이 그 대립물로 바뀐다.
부르주아 경제학의 붕괴
경제학자들은 세계적 슬럼프는 있을 수 없다는 것, (술을 마신 사람이 숙취에 이른 뒤에야 교훈을 얻듯이)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이를 배웠다는 오래된 환상에 고집스레 매달렸다. 그들은 금융위기는 미국에 한정될 것이라고, 미국 경제와 세계의 여타 국가 경제들은 탈동조화될 것이라고(이는 글로벌화에 관해 그들이 예전에 말했던 것들을 뒤집는 것이다), 유럽과 중국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이 주장들은 얼마나 공허한가! 부동산 가격이 세계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글로벌 경제가 침체하고 있다. 유럽 경제는 이미 분명하게 침체하고 있으며, 은행 파산과 가용자본, 신용의 부족을 피할 수 없는 가운데 이 과정이 지속될 것이다. 지금까지 이른바 신흥시장(이머징 마켓) 국가들이 성장을 계속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자본 흐름이 말라붙고 상품가격이 하락할 때에 그들이 일반적 위기와 무관하게 지낼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물론 이 과정은 여러번(over time) 일어날 것이고, 균일하지도 않다. 위기에로 진입하는 속도는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결국 그들 모두는 위기에로 빠져든다.
어느 나라에서 위기가 시작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주된 것은 근대적 조건 하에서 그것은 한 주와 대륙에서 딴 곳으로 반드시 옮겨간다는 사실이다. 이 경우는 투기 매니아들을 극단적으로 몰고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의 예상과 달리, 위기는 늦든 빠르든 아일랜드, 스페인, 영국, 그리고 전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그 영향은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에 미쳐서, 다음 나라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이다. 중국은 아직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나라도 피할 수 없다.
위기 속에서 자본가들은 축소된 시장의 한 몫을 차지하기(corner) 위해 비상수단에 호소하도록 강제된다. 그들은 경쟁자를 누르기 위해 할인판매, 덤핑 등 온갖 수단을 다 발휘한다. 그들은 이를 통하여 디플레를 촉진함으로써 위기를 더 악화시킨다. 사람들은 낮은 가격을 기대하여 구입을 늦추고, 그리하여 가격은 더 떨어진다. 우리는 주택 시장에서 이 현상을 분명하게 목도하고 있다.
악영향은 통제할 수 없는 유행병처럼 한 나라에서 딴 나라로 파급된다. 모든 나라가 과잉수출(즉 과잉생산)하고 과잉수입(과잉거래)했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자본론3권, 481쪽 참조). 그들 모두가 신용을 지나치게 늘리고, 무슨 고통이 따르더라도 꺼뜨려야 할 인플레와 투기의 불꽃을 지폈다는 것은 명확하다. 말하자면 그것은 한 나라나 은행이나 투기꾼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문제다. 어떤 하강(downturn)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에는 새로운 균형에 도달하고, 가격이 안정화되고 이윤율이 회복되고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하강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시작된 지도 얼마 되지 않으며,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케인즈가 말한 적 있듯이 “결국 우리는 모두 죽는다.”
사건을 겪은 뒤에 현명해지기는 쉽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이미 일어난 일들을 예측하는 데에 뛰어나다. 이 점에서 그들은 몇 백 년 전의 역사적 사건들을 정확하게 예견한 구약 성서의 저자들과 비슷하다. ‘여호와의 증인’들 같이 잘 속는 사람들은 이것에 크게 감명을 받아 그것을 성경의 신성한 영감의 증거로 인용했다. 의심 많고 과학을 추구하는 다른 사람들은 그런 예언을 듣고 큰 소리로 웃어댄다. 맑시스트들을 비웃고 위기는 없다고 우리에게 단언한 바로 그 사람들이 지금은 울부짖으며 자기 손을 쥐어 튼다. 그들은 우리가 ‘30년대 이후로 최대 위기 속에 있다’고 우리에게 실토하지만 그들이 불과 어제 말했던 것과 이것 간의 모순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기를 희망한다.
단순한 사실은 이것이다 ; 최근 20-30년동안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예측하지 못했다. 그들은 활황(붐)도 침체(슬럼프)도 예측하는 데 무능력했다. 그들은 경제 사이클은 소멸했고 대량 실업도 과거의 일이 되었으며 인플레라는 괴물도 유순해졌다는 식으로 우리를 설득하는 데에 수십년을 소비했다. 모든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자연스럽게 이 넌센스를 금과옥조(good coin)로 받아들였다.
영국의 고든 브라운은 “붐과 파산의 사이클은 사라졌다.”고 큰소리쳤다. 이제 영국 경제가 경기침체로 미끄러지자 그는 머리를 긁적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퇴보하고 파산한 체제를 정당화하는 것 빼고는 아무 쓸모가 없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예견한 것
맑시스트의 관점을 부르주아의 그것과 비교해 보자. 그들 자신의 프로파간다를 믿는 중대한 실수를 범한 부르주아 경제학자들과 대조되게, “the Marxist tendency"는 상황의 현실성을 설명했다. 1999년에 씌어진 “칼날 위의 기록 ; 세계경제 전망”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
“과거에 연준(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역할은 당사자(party)가 스윙(swing)에 들어갔을 때 펀치볼을 제거하는 것이라고들 말했다(옮긴이 주: 펀치볼은 투수, 포수도 없이 벌이는 야구 비슷한 놀이). 그러나 이 말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돈에 청렴결백하고 엄격하다고 그럴싸하게 늘어놓으면서 (연준 의장) 알란 그린스펀은 역사상 가장 큰 투기를 부추겼다. 비록 그는 그 위험을 인식해야 했지만. 그는 로마가 불타는 것을 즐겼던 네로 황제와 비슷하다. 사실, 그는 이자율을 0.25% 인상하여 불길에다가 휘발유를 부었다. 옛 격언이 새삼스럽다. “신들이 멸망시키기를 바라는 사람들, 그들이 먼저 미친다.”
그 글의 또다른 대목 : “근대의 생산력 발전에 근본적인 장애물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국민 국가다. 그러나 한동안 자본주의는 세계 무역의 발달, 신용의 확장 같은 일련의 수단으로 이 장벽을 부분적으로 우회할 수 있었다. 맑스는 오래 전에 자본주의 체제에서 신용의 역할을 설명한 바 있다. 그것은 시장이 정상적인(normal) 한계를 넘어 운행될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같은 방법으로, 세계 무역의 확장은 한동안 탈출할 길을 열어준다. 다만 미래에 더 재앙적인 위기를 축적한다는 대가를 치르면서.”
“자본주의 생산은 끊임없이 이들 내적 장벽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벌인다. 그러나 같은 장애물을 더 방대한 규모로 다시 만들어내는 수단을 통해서만 그것들을 극복한다.”
“자본주의 생산의 실질적인 장벽은 자본 자신이다.”(자본론 3권 15장)
“자본주의 생산의 회로는 신용에 의존한다. 사슬의 한 고리의 지불능력은 다른 고리의 지불능력에 의존한다. 사슬은 수없는 지점에서 깨질 수 있다. 이르든 늦든 신용은 현금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이 사실은 자본주의 상승과정을 통해 빚을 진 사람들이 너무나 자주 망각한다. 자본주의 확장의 첫 번째 국면에, 신용은 생산에 박차를 가하는 구실을 한다. : 생산과정의 발달은 신용을 확대하고 신용은 산업적 상업적 경영(operation)의 확장으로 이끈다.” (자본론 3권. 470쪽)
“그러나 이것은 동전의 한 면일 뿐이다. 신용과 채무의 급속한 확장은 시장을 그 정상적(normal) 한계 너머로 밀고 가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이것은 그 반대로 전환한다. 붐 기간에 신용은 옛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풍요의 뿔’처럼 제한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위기가 나타나자마자 환상은 산산조각난다. 회수는 늦어지고, 상품은 시장에 팔리지 않고 쌓이며 가격은 떨어진다. 세계 시장의 발달은 이 근본적 과정을 변경하지 않으며, 신용이 자신을 표현하는 범위를 더 크게 넓혀줄 뿐이다.
마지막 분석에서 부채의 축적은 위기를 더 깊게 하고 연장한다. 일본의 최근 역사는 이 사실을 충분히 확인해준다. 급속히 증가하는 자산과 주식 가격으로 특징지어지는 십년의 붐 뒤에 이자율의 급등에 의해 거품이 터졌다.
상황은 그 무렵의 미국의 상황과 비슷했다. 1989년 12월 25일, 일본의 은행은 주식 교환의 첨예한 하락에 기인하여 이자율을 올렸지만, 땅값이 계속 올랐기 때문에 새 이자율 인상은 불가결했다. 결국 이자율은 6%나 인상되었고, 그해 말 주식 가격은 40%나 떨어졌다. 그 뒤로 일본의 은행은 이자율을 높게 유지했다. 그 무렵 경제학자들은 일본의 은행이 경제를 신중하게 운용하는 데 대해 찬양 일색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십년간 경기침체를 지속한 것이었다.
“세계화로 나아가고, 신용과 금융거래에 대한 규제를 폐지했는데도 확장 규모는 더 커지지 않았지만 어느 쪽도 세계적 충돌의 잠재력(the potential for a worldwide crash)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위기가 가공자본, 주식교환 속임수, 신용의 과도한 사용에 의해 초래되었던 사례는 아니다. 맑스는 자본론 3권에서 이것을 설명한다.”
“신용 시스템이 선호하는 이들 가짜 거래와 투기도 무시하자. 그러면 위기는 자본가의 소비와 그들의 축적 간의 생산의 불균형의 결과로만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상태로는 생산에 투자된 자본의 대체는 비생산 계급들의 소비능력에 크게 의존한다. : 노동자들의 소비 능력은 부분적으로 임금 법칙에 의해, 부분적으로 그들이 자본가 계급에게 수익을 안겨주면서 고용될 수 있는 한에서만 그들이 사용된다는 사실에 의해 제한된다. 모든 실질적 위기의 궁극적 이유는 항상 가난과 대중의 제한된 소비가 생산력의 발달로 향한 자본주의생산양식의 드라이브에 대립된다는 것이었다. 마치 사회의 절대적인 소비 능력만이 그들의 한계를 구성하는 것처럼. ( 본론3권 472쪽)
“세계 무역의 확장과 아시아의 새 시장의 개방은 시의적절하게 경기 부양을 도왔다. 그러나 더 큰 붕괴를 촉진하는 대가를 치렀다. 사태는 이렇게 도래한다.”
위에 옮긴 글은 거의 십년 전에 서술되었고, 그때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압도적 다수는 세계 침체의 가능성을 아직 부인하고 있었다. 우리는 질문할 권리가 있다. 부르주아경제학과 맑스주의, 어느 쪽이 세계 경제의 과정들을 더 잘 이해했으며 올바로 예측했는가?
중국은 세계를 구할 수 있는가?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 하나라도 붙든다는 속담이 있다. 위기의 깊이에 놀란 부르주아지와 그 변호론자들은 자기들을 추락에서 구해줄 지푸라기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고 있다. 최근까지 그들의 희망은 아시아, 특히 중국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중국 경제는 세계시장에 견고하게 박혀 있으며 그것의 모든 휘발성을 반영할 것이다. 지오프 다이어(Geoff Dyer)가 최근에 파이낸셜 타임즈에 쓴 ‘베이징의 부담’이라는 기사는 부제가 “중국의 침체(slowing)는 세계경제에 나쁜 징조”로 되어 있다.
미국의 하강에도 불구하고 수출은 2008년 첫 8개월동안 22%나 늘었다. 설명의 일부는 중국 기업들이 다른 활황의 발전국가들 속에서 새로운 시장을 끊임없이 개척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위기의 지연일 뿐이다. 월가의 위기, 유럽과 일본의 경기침체 이래로 투자자들은 중국도 위기에 빠져드는 것이 아닌지 묻기 시작했다. 5년의 고속성장 이후 중국경제는 지금 뚜렷이 완만세(slowing)로 돌아섰다. 8%를 밑도는 성장률은 중국과 글로벌 경제에 큰 함축을 갖는다. 경제학자들은 중국의 은행 부문도 염려한다.
이미 수출시장에 문제의 징후가 있다. 광동의 의류 산업은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지방통계에 따르면 1-7월 의류와 악세사리 수출은 작년 같은 시기보다 31% 하락하여 133억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플라스틱 제품, 완구, 전등의 수출도 부진하거나 하락했다. 이는 미국의 수요 부진에 말미암은 것인데 7월과 8월에 미국 소매 판매는 하락했다. 광동의 대미 수출 성장은 올해 첫 7개월간 6.3%로 하락했다. 그것은 동시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유로 강세와 광동의 대유럽 수출 27% 증가는 달러 약세와 미국 시장 축소를 보상했다. 그러나 중국에게 거대 시장의 하나인 유럽이 첨예한 불황을 겪는다는 증거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이는 중국 수출에 점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는 태풍 전의 고요함이 될 수 있다”고 상하이의 standard chartered 은행에 있는 경제학자 스테판 그린이 말한다.
최근 중국 경제를 추동한 투자 붐의 근본 구성요소인 부동산 시장과 더 큰 관련이 있다. 판매는 하락하고 8월에는 건축면적도 줄었고 그 반면에 철강, 시멘트, 에어컨디션 생산은 이 달에 현상유지하거나 하락했다. 이는 취약한 경기의 또다른 신호다. 분석가들은 모기지 인가도 최근 몇 달 새에 크게 하락했다고 말한다. “중국 부동산부문의 폭락 가능성이 높다”고 상하이의 모건스탠리 분석가 제리 로우는 말했다. 만약 부동산 시장이 내년에 크게 하락한다면 이는 은행 부문에 심각한 결과를 낳는다. 내년에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8%를 밑돈다면 집값이 크게 하락할 것이고 사적 부문 투자의 붕괴가 뒤따라서 사회적 정치적 결과가 간단치 않을 것이다.
경제의 다른 부문에도 경고의 신호가 있다. 주식 시장의 붕괴는 소비자의 신뢰에 부정적 효과를 미친다. 도시 소득증가율이 올해 크게 하락했다. 자동차 판매는 지난달 6% 떨어졌고 올 여름 항공 여행도 크게 줄었다. 중국의 전기제품 최대 소매상 고메씨는 자기 가게의 제곱미터당 판매가 2/4분기에 3% 줄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자율을 인하했는데 이는 그들이 위기를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플레 재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재정정책을 발휘할 여지가 제한돼 있다. 이자율이 2월에는 8.7%로 피크에 올랐다가 8월에는 4.9%로 떨어졌다. 중앙은행 총재 초우 챠오촨(Zhou Xiaochuan)의 말에 따르면 “인플레는 지난 몇 달 가라앉았지만 언제 다시 오를지 몰라서 방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의 침체, 또는 심각한 성장 둔화가 아프리카, 중동과 남미의 1차상품 생산국을 비롯하여 세계 시장에 심각한 여파를 미칠 것이다. 이를테면 구리 가격은 지난 두 달에 23% 떨어졌는데 부분적으로는 중국의 금속 수요가 올해 절반 이상이 감소된 데 대한 두려움에 기인한다.
집중화된 경제
레닌은 정치는 집중화된 경제라고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경제 위기는 자본가들 뿐 아니라 모든 계급들의 심리 상태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자본주의가 앞으로 나아가는 기간에는 노동계급과 노동조합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압력이 배가되었다. 영국에서는 20년 이상 동안 심각한 경기 침체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시장 경제의 기적적인 결과에 대한 부르주아 정치가들과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심지어 노동계급에서도 먹혀들었고, 특히 지도력에서는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이것이 유럽의 사민주의와 공산당, 그리고 전 세계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완전한 퇴보의 물질적 기초였다.
지난 30년동안 자본주의 반혁명의 선봉에 섰던 영국에서 그것은 신노동당주의(new labourism)가 토니 블레어의 지도력 아래서 잉태되고 번성하게 된 토양이었다.
노동운동 활동가들에게 이 기간은 끝없는 악몽처럼 보였다. 대중 단체 지도자들의 타락에는 끝이 없는 것 같았고, 그들은 지배계급과 시장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는 것 같았다. 활동가들의 낙담은 무관심과 전통적인 대중단체들로부터의 탈퇴로 이어졌고, 이러한 대중 단체들은 일자리와 승진을 추구하는 중간계급 출세주의자들로 채워졌다. 결국 심각한 우경화의 길을 걸었고, 노동자들의 환멸은 깊어만 갔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온, 자신을 좀먹는 사악한 순환이다. 그러나 근래에 상황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하고 있다. 일반적인 인간의 양심은 보수적이다. 사람들은 보통 변화를 두려워하고 친숙한 것에 매달린다. 습관, 일상, 그리고 전통은 사건 뒤에 처져 있는 대중들의 양심에 크게 의존한다.
그러나 격변기에는 계기들이 주요한 지점까지 가속화하게 되는데, 이 상황에서 양심은 대폭발(bang)을 따라잡는다. 우리는 현재 그러한 주요 지점까지 도달한 상태이다. 세계의 산업화된 국가들에 적용되는 것은 때때로 ‘제3세계’로 불리는 국가들에게는 10배나 더 잘 적용된다.
극심한 빈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 UN에서 출간된 보고서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의 모든 아이들 중 4분의 1이 체중미달이다.: 50만명 이상의 여성이 해마다 출산을 하다가 죽거나 임신 합병증으로 죽는다.; 개발도상국의 증가하는 도시 인구 중 3분의 1이 슬럼가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터아메리칸 뱅크의 보고서는 올 여름에 치솟는 물가로 인해 2천 6백만명의 라틴아메리카 인구가 절대 빈곤의 상태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것은 전 세계적인 규모로 장기간의 경제 성장 이후에 나온 상황이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제공할 수밖에 없는 최선인 것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혁명의 암시를 잉태한 세계적인 현상에 직면해있다. 하여 세계는 자본주의의 지구적 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현재의 위기는 특히 미국의 경제 시스템에 있어서 지나친 모험주의에 대한 규제 실패의 결과라고 주장되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정말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지난 30년동안 부르주아 경제학자들과 정치가들은 정반대로 주장해왔다.: 즉 ‘모든 경제 규제는(특히 금융 규제는) 나쁜 것이고 철폐되어야 한다’고.
지나친 배당금을 억제하고 증권거래소를 규제할 필요성에 대한 선동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기적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어떤 매커니즘으로? 은행가들은 규제를 피할 수천가지 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규제자들이 그들의 부정한 활동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이중장부 회계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미국 정부도 비슷한 속임수를 사용하여 예산상의 손실의 실제 규모를 위장한다.
주식시장을 규제하자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며, (일시적으로) 단타매매(selling short)를 금지하자는 주장 또한 그러하다. 시장이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주식을 사고 파는 것이 필요하며, 주가가 오르게 될지 내리게 될지를 가늠하는 기초로서 그렇게 해야만 한다. 주가가 상승할 때만 주식을 사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분명히 터무니없는 것이다. 신용도가 좋은지 나쁜지를 구별하도록 되어있는 신용평가기관들은 모기지의 약점을 바라보지 않은 채 증권화된 모기지 패키지를 평가했다.
비슷하게 패니 매이와 프레디 맥이 발행한 미국 채권의 구입자들은 미 정부가 그것을 보증했다고 기쁘게 생각했다. 결과는 미국의 납세자들이 현재 5조 달러 이상의 모기지 하에 있으며 앞으로 얼마가 될지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결론은 꽤 명백하다. 이윤을 추구하는 자유시장 경제로 가거나 아니면 국가계획경제로 가거나. 그러나 ‘규제화된 자본주의’는 언어적 모순이다. 다른 기사에서 파이낸셜 타임즈는 문제를 좀더 분명하게 제기하고 있다.
“정치가들이 논쟁적인 급료를 억제하기 위해 어떠한 정책을 고안해내든, 금융분야에서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고, 산업의 규제된 부분을 피해나갈 것이라는 낙관론이 있다.”
필요한 것은 수백만의 운명을 완전히 결정하는 괴상한 카지노를 끝장내고 자본주의적 무정부상태를 계획 경제에 기초한 이성적인 사회로 대체하는 것이다. 부시와 브라운에 의해 취해진 조치는 국유화를 나타낸다고 말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국유화에 대한 사회주의적 가치관과는 공통점이 없다. 그것들은 사회에 엄청난 부담을 지우고 진보의 길에 장애물을 부과하는 부유한 기생충의 손에서 경제 권력을 제거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이러한 기생충들에게 노동계급과 중산층의 주머니에서 나온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며 이들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시도를 대변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보위하려는 의도로서 일종의 국가자본주의인, 진정한 국가화와는 공통점이 없는 이러한 정책에 급진적으로 반대한다.
그것들은 불가피하게 독점의 증대와 대량 약탈, 은행 폐쇄, 더 높은 모기지, 그리고 다른 반 노동적 조치들로 이어지게 된다. 은행가들은 그들의 사악한 행위들을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게 되는데, 국가는 은행가들의 손실을 모두 사들이고 나서, 수익을 내기 위해 훨씬 더 막대한 양의 납세자들의 돈을 지출한다. 그리고나서 그것들을 다시 은행가들에게 팔게 되는데, 은행가들은 이로부터 사회의 비용으로 ‘이중 살해’를 하는 것이다. 그들은 투기와 도적질을 완전히 재개할 수 있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증명된 필요에 기초하여 최소의 보상으로 은행과 보험회사, 그리고 대기업들을 국유화함으로써 개인들의 손에서 경제의 지휘권을 가져오는 것이다. 오직 생산의 힘이 사회의 손에 있을 때, 생산에 대한 이성적인 사회주의적 계획을 설립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며, 그 속에서 부유한 기생충이나 투기꾼의 손이 아닌, 사회에 이로운 방향으로 결정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것은 사회주의의 기본적인 목표이다. 이제 이러한 생각은 이를 전에는 낯설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수백만의 사람들로부터 이해되고 환영받을 것이다. 부시 플랜에 대항하여 뉴욕의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은 사회주의자들이 아니었다. 12개월 전에 그들은 아마도 여전히 자유시장경제의 옹호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전에 맑스를 읽어보지 않았으며 의심할 바 없이 자신들을 애국시민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생활이 가르쳐주는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불과 며칠만에 평생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빠르게 배우고 있다. 빅토르 위고가 전에 말했듯이
“시기가 도래하면 사람들의 생각이 군대보다도 강력하다.”




